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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550

정지용 생가 정지용 생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옥천은 국민의 애송시 "향수"의 작가 정지용 시인이 태어난 고장이다. 그렇기에 지용 생가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의 대표작인 향수가 주는 감동만큼이나가슴 설렌다.경부고속도로 옥천I.C를 나오면 신호등이 설치된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선다. 37번 국도를따라 보은 방면으로 향하면 지용로가 나오고 한적한 구읍 삼거리에서 개천 따라 2백m를더 들어가면 정지용 생가가 나타난다. 초가집 한 채와 헛간 한 채, 그리고 마당에는7∼8m 길이의 넓적한 바위 두 개가 다리처럼 놓여져 있다. 이곳이 정말 지용 생가인지 마당 한편에 향수 전문이 새겨진 시비와 생가 앞에 서 있는 시인의 동상을 보고서야 알 수 있다. 초가집 주위로 민가와 건물들까지 버티고 있어 시인의 향기를 반감시키는 것이.. 2010. 9. 25.
함평 용천사 함평 龍泉寺 천년고찰 용천사는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모악산에 위치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삼국시대, 백제 침류왕 1년(서기384년), 인도에서 건너온 마라난타(摩羅難陀)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꽃무릇 군락지가 유명하며 산넘어에 불갑사가 위치하고 있다 저렇게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서 사천왕문에 들어서고 4대천왕을 만나는게 의미가 있겠다. 저 문을 지나서도 또 경사가 급한 돌계단을 올라야 경내로 들어간다,부처님 만나러 가는데 그만한 수고야.... 사천왕문에는 불법을 수호하고 도량을 지키는 사대천왕을 모셔 놓았는데, 이 죄인은 늘 절간의 이 문을 통과 할 때면 촬영은 커녕 무서워서 얼른 빠져나간다,ㅎㅎ... 1) 동방 지국천왕 ; 선한 이에게 복을, 악한 이에게는 벌을 주는 하늘의 왕. 2) 서방 광목.. 2010. 9. 21.
영광 불갑사 영광 불갑사 불갑사 꽃무릇을 보러 갔으나 시기가 조금 이른 듯 꽃이 많이 피지 않았다, 때마침 절간 처마밑에서 소낙비를 피하면서 불갑사의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담게 되었다, 알고보니 불갑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이었다 대웅전 용마루 중앙에 돌출한 용마루 보주가 눈에 띈다. 일종의 사리탑으로 우리나라에서 불갑사 대웅전이 유일하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대웅전 용마루 가운데 저런 양식은 처음 보았다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래한 인도스님 마라난타존자(摩羅難陀尊者)가 남중국 동진(南中國 東晋)을 거쳐 백제 침류왕 1 년에 영광땅 법성포로 들어와 모악산에 최초로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이 절이 제불사(諸佛寺)의 시원(始原)이요 으뜸이 된다고 하여 불갑사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정유재란시 소실된 후 다시 중건하였.. 2010. 9. 19.
육영수여사의 생가 육영수여사의 생가 복원 아주 어린시절의 희미한 기억으로 옥천 구읍에 큰 고택이 하나 있었다 부자집 담 너머의 일은 알 수도 없었고 들어 가 본 적은 더욱이 없었다 , 고향에서 흘러다니던 뜬소문으로는 그 부자의 부인이 열둘이 넘는다는 부풀려진 풍문이 어린 내 기억에도 선명하기만 하다 하여간에 그집 사위가 혁명을 일으켜 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얼마지나지 않았을 때, 그 부자는 세상을 떴는데 사위 덕에 죽어서까지도 호사를 누렸다, 그 대통령의 치적은 평가하는 이에 따라 다른데, 영부인이셨던 육영수여사의 평판은 세간에 좋게만 기억 되고 있다. 그동안 정치적인 부침도 있어서인지 모르지만,돌보지 않아 이 고택은 허물어지고 퇴락하여 폐허처럼 버려졌다가 최근에 복원이 되었다, 그래서 고향에 간김에 돌아 보게 되었는데... 2010. 9. 16.
옥천성당 옥천읍 삼양리 옥천성당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제7호) 오랫만에 고향에 와서 일찍 성묘를 마치고, 카메라 배낭 하나 둘러메고, 이곳저곳 어릴적 추억을 찾아 헤메인다, 혼자이니 자유롭고, 오랫만에 햇살마저 눈부시다 어릴적에 할머니 손에 이끌려 몇번 드나 들었던 그 성당이고, 어머니가 다니셨고, 종교를 거부하시던 아버님마져 마지막에 결국 받아 들이셨던 옥천성당, 나는 거의 40년만에 찾아 왔나보다 옥천은 예나 지금이나 작은 읍이다 성당은 작은 읍 어디서나 보이는 언덕위에 있었고, 내가 다닌 중학교는 바로 성당 언덕 아래 있었다, 지금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은 그당시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후에 농업용수가 필요하지 않게 되어 매립해 버렸나 보다, 미술시간에 연못 주변까지 선생님따라 나와 성당주변을 그리고는 했었.. 2010. 9. 15.
남해의 유자 내가 어릴 적에 아버님이 유자 이야기를 하시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유자차가 대중화 되지도 않았던 때이고 귤도 구경 할 수 없는 아주 귀한 과일이었던 시절이었다, 할아버지의 고향인 남해에서 자라는 유자여서 아버지는 잘 아셨겠지만, 충청도 산촌소년인 나에게는 상상이 안갈 뿐 아니라 엉뚱한 초본 식물로 이름이 비슷한 열매를 떠 올리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유자를 보았고, 찻집에 가면 유자차를 주로 마시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처음으로 멀고 먼 할아버지의 고향인 남해에 벌초를 하러 갔을때, 처음으로 나무에 달린 유자를 보았다 귤도 아닌 것이 탱자는 더욱 아니고 그냥 과일로도 먹기 어려운 이상한 과일이 유자였다 몇십년 전 그날도 집안의 담가에 그리고 밭에 서 있는 유자나무들.. 2010. 9. 7.
봉원사 봉원사(奉元寺) 서울 서대문구 鞍山 기슭에 자리잡은 봉원사는 한국 불교의 전통교단인 太古宗의 總本山이다 봉원사의 역사는 깊고도 깊다. 신라 진성여왕때,도선국사가 현 연세대 터에 창건한 절로서 고려말 공민왕대에 활약한 태고(太古) 보우(普愚)스님이 크게 중창하여 도량을 아름답게 조성하였다 임진왜란때 전각이 소진된후 중건되었고,영조 24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고 奉元寺 라는 영조 친필현액을 내렸는데, 이는 6.25 전쟁때 소실 되었다 개화파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이동인 스님이 계셨던 갑신정변의 요람이기도 했고 1945년 광복 기념관을 건립하였으나 이또한 6.25 전쟁때 소실 되었다고 한다, 대형 함지박에 연꽃을 가꾸어 연꽃 축제를 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연꽃은 거의 졌으나 록색의 연잎으로 절마당이 가득한 풍경도.. 2010. 8. 21.
법주사 마애여래의상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 법주사에서 금동미륵대불과 함께 눈여겨 볼 만한 게 마애여래의상이다 사찰입구에서 가까운 모퉁이에 높이 약 7m의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의상은 전체 높이가 6.18m나 된다 의자에 걸터앉듯 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은 모습인데 이러한 의좌상은 중국에는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물다고 한다 이것 외에 고신라 때의 불상인 경주 삼화령 석조미륵의상이 알려져 있고 의좌상은 대게 미륵불이다 수줍은 소녀가 온전히 드러내지 않고 살짝 숨어서 기다리던 님을 바라보는 듯 하다여래상도 바위뒤에서 얼굴만 내어 놓은채 법주사를 찾아온 불쌍한 중생들을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 보고 있지 않을까? 거대바위에 가려서 상체 일부만 보이는 이 각도에서 보는 게 완전히 들어난 모습보다 나는 어쩐지 좋다 앞.. 2010. 8. 14.
속리산 법주사 속리산 법주사 고향 부근이어서 젊은날에는 여러번 갔었고 문장대까지 올라갔던 속리산 법주사이나... 최근에는 거의 10여년만에 가는 길이었다 시간이 멈추어 선 듯 모든 것이 그대로이나, 미륵대불만은 찬란한 금박옷을 입고 속세를 압도하며 눈부시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오래전 처음 갔을 땐 씨멘트 대불이 서 있었고, 90년대에는 금을 입히지 않은 청동대불이 있었는데, 지금은 황금으로 입힌 대불이 우리를 맞아 주고 있다 그것도 2002년에 입힌 것이라서 지금은 금을 다시 입히는 개금불사를 한다는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한쪽 날개를 잃은 정이품송이 걱정 되었었는데...많은 분들의 노고로 싱싱한 모습을 보게 되어 참 다행이다 전에 보았을 땐 영양제 주사를 꽃은채 나무 전체를 방충망으로 씌워 놓은 걸 본 기억이 .. 2010.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