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은 성종14년(1483) 세조비 정희왕후,예종비 안순왕후,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창건한 궁이다, 때문에 생활주거 공간인 내전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었으며 창덕궁의 부족한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법전과 편전 등이 배치되어 있어 독자적인 궁궐로서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2015.12.12.>
창경궁은 선조25년 임진왜란으로 거의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에 대부분 재건되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지나면 옥천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명정문에 이른다
명정문을 지나면 품계석이 줄지어 있는 너른 조정과 법전인 명전전에 이른다,
명전전은 창건할 때부터 일반적인 궁궐의 정전이 남향인 것과 달리 자연지세에 맞추어 동향하고 있으며, 후에 이괄의난과 순조때 대화재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으나 명정전,명정문,홍화문만은 살아남아 17세기 조선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고 특히 명정전(국보 제226호)은 조선궁궐의 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명정문 왼편 회랑밖의 정원...우리 어렸을 적에는 이곳에 창경원 동물원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변경하고 동물원을 설치하고 전각을 헐어 내어 짖밟았다
영조의 어필현판 숭문당...임금의 경연이 이루어지는 공간
담넘어 보이는 전각들은 창덕궁 지역이다
경춘전...1752년 정조가 태어난 곳으로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환경전...중종이 승하한 곳이며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가 2달만에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영조는 편전으로 이용하기도 했는데 사조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고 첫날 세자로부터 정무를 보고받은 곳이다
통명전(보물 818호)...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건물로 지붕에 용마루가 없다,숙종 때 장희빈이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묻어 인형왕후를 저주하다 사약을 받은 곳이다
양화당...인조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피난하였다가 환궁하여 거처한 곳으로 이곳에서 청나라 사신을 접견하였다
양화당과 통명전 일원
아름답고 힘찬 통명전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창경궁 정원에 3그루의 백송중 하나
백당나무 열매가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