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된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 두 그루는 사적 제143호 <서울 문묘와 성균관> 내의 대성전(大成殿) 앞뜰이자 신삼문(神三門)의 동쪽과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균관과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는 이유...은행나무가 유교교육의 상징인 행단(杏亶)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고향 산동성 곡부현의 큰 은행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에 착안해 전국적으로 성균관,향교 등 유교 교육기관에는 주로 은행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은행나무를 심는 다른 이유는 또 있는데,우선 은행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다.
은행나무가 유교적인 음양오행의 도를 알고 있다는 풀이로, 남녀를 엄격히 구분했던 유교의 영향으로 나무를 심을 때에도 암나무와 수나무를 분리해 심었다. 열매 하나에 씨 하나인 것도 은행나무의 특징인데, 유교에서는 씨가 여러개로 나뉘어 있지 않은 것을 '충성'과 '지조'의 상징으로 봤다고 한다.은행나무 자체가 너무 독해 벌레가 없는 것도 중요하다. 유교 학문을 통해 관리로 나아가게 되는데, 은행나무에 빗대어 출세했을 때에도 벌레가 끓는 탐관오리가 되지 말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2017.11.16.성균관>
수령 측정 결과, 두 그루 모두 450±50년의 노거수로 수형이 아름답고, 역사적 기록에도 그 식재 시기와 보존상태 등과 관련된 내용이 확인되고 있어 2014년 5월 1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하게 되었다
성균관의 은행나무와 관련한 역사적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송자대전』에 중종조의 문신인 윤탁(尹倬, 1472~1534)이 행단(杏壇) 제도를 모방하여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강당 앞 뜰에 식재하였다는 기록이 확인되고 있는데, 사료상의 식재된 시점과 측량된 과학적 수령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상기 사료에서 언급되고 있는 은행나무 2그루가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한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인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대성전 은행나무와 관련해서는 『승정원일기』나 『숙종실록』 등 실록 기사에서도 대성전의 은행나무의 가지가 부러져 성균관 건물을 손상시킬 때면 국가 차원에서 위안제(慰安祭)를 지내고 성균관 건물들을 보수했다는 사실들이 확인되고 있어 유교적 학문을 닦는 도량을 상징하는 은행나무가 당시 국가적으로 어느 정도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고, 또 관리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