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에 갈 때마다 이 현판을 올려다 보는데, 이 현판은 조선 후기 서화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기 때문이다
1856년(철종 7)에 영기스님이 새긴 "화엄경수소연의초"등 경판을 봉은사에 안치하기 위해 법당을 지었는데,당시 추사는 유배지에서 돌아와 과천에 있는 과지초당에 머물고 있었다. 그곳에서 봉은사를 왕래하다가 1856.10.10.별세했는데 이 현판 글씨는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썼다고 전해진다
이 현판의 글씨는 어리숙하면서도 굳센 필세를 들어낸다,말미에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 71세 과천 늙은이가 병중에 쓰다)이라고 낙관하였다."果"는 추사가 과천에 머물 때의 별호인 과옹(果翁),과로(果老)를 의미하며 꾸밈이 없는 졸박한 글씨에서 추사 말년의 청정무구한 심성을 엿볼 수 있다, 봉은사 홍매화를 보러 갈 때마다 찍어 보는 추사의 현판이다,
어쩐지 힘차게 쓰지 못하고 머뭇머뭇 쓴 듯한 추사 말년의 글씨라서 더욱 정감이 간다.
새로 채색을 했는지 현판이 화사해 보인다.<2022.3.21.봉은사>
약병을 들고 있으니...약사보살?( 에구 무식...)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제1819호) 중 석가모니부처님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제1819호) 중 아미타부처님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제1819호) 중 약사여래부처님
봉은사 미륵대불
영각 앞의 홍매화
대웅전 앞마당의 화려한 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