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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

운곡암 석조관음보살상

by 에디* 2025. 4. 12.

 

얼레지로 유명한 화야산 입구 마을은 삼화1리인데 예로부터 절이 있다하여 절골 또는 큰골(大谷)로 불리었다.

그 절골에는 옛부터 유명한 불당인 운곡암(耘谷庵,雲谷庵)이 있다.

고려의 유신 운곡 원천석이 제자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태조가 되자 낙향하여 이곳 화야산에 숨어 살았다고 하는데, 태조가 은사인 운곡을 등용하고자 화야산으로 모시러 찾아 왔으나, 운곡은 미리 알고 치악산으로 떠난 후였다고 한다. 태조는 이곳에 암자를 지어 운곡암이라 하고 은사의 충절을 간직하도록 하였다고 한다.(가평문화원 자료)

2025.4.3. 화야산

 

조선 태조와 고려유신 원천석의 유래가 전해지는 운곡암이지만 625전쟁때 불타고 현재는 볼만한 불당이 보이지 않으나 규모가 큰 석조관음보살상만이 지나는 길손의 눈에 띈다.

 

화야산으로 꽃보러 다닐 때 전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5년 이내부터 이 석조관음상이 보였던 듯 하다, 하필이면 석조관음상 아래에서 개가 맹렬하게 짖으며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관계로 건립연대를 알지 못했다.

석조불상 등을 볼 때 표정을 중요하게 살펴보는 편인데, 비교적 아름답고 잘 조성된 큰 규모의 석조관음상이라 하겠다,다만 눈,코의 너무 뚜렷한 기계적 조각느낌이 조금 거슬린다.(극히 주관적인 생각임)

 

 

 

 

중국 무협영화에 나올법한 단청 없는 일주문에 걸려 있는 운곡암 현판

글씨를 못쓰지만, 내가 보기에 소박하면서도 조화롭고 아름다운 글씨다.

화야산에 꽃이 많으니 꽃 화(花)花野山일 것 같지만,벼 화(禾)자 禾也山이다.

벼가 잘되는 마을인 화야리에 있는 산이라 화야산이 되었다고 하는데...(가평문화원자료)

어찌하여 운곡암 현판에는 화할 和자 和也山으로 썼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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