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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제주

그리운 바다 성산포

by 에디* 2013. 5. 26.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아침 여섯시.
어느 동쪽에나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 피운다.
태양은 수만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 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 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드는 파도소리에 귀를 찢기었다.
그래도 할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고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어진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 감으면 보일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거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거다.

 

 

 

<사진 제주 애월항 일몰 20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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