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마을 다랭이논
농토를 한뼘이라도 더 넓히려고 산비탈을 깎아 석축을 쌓고,계단식 다랭이논을 만들었다
설흘산과 응봉산이 바다로 흘러드는 급 경사지에 조성된 계단식 논이 무려 100층이나 된다
농토가 부족한 산간지대의 고단한 삶의 현장이지만, 이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농촌문화 경관이 되었다
전해오는 마을의 옛이름은 간천(間川)이었으나 조선 중기부터 가천(加川)으로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2002년에 농촌진흥청에서 선정한 농촌 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었다 <2010.7.3.남해군>
가천마을 전경이다, 비록 초가지붕은 사라졌으나 비탈길에 자리잡은 가옥 구조는 예날 그대로이다.
마을 주민 90%이상이 조상 대대로 살아오는 사람들이라 네집 내집없이 식사시간에 앉는 곳이
바로 밥먹는 곳이 되는 훈훈한 인정이 살아 있는 마을이란다
좁은 다랭이 논이라 기계로 농사 짓기 어려운지라 지금도 소와 쟁기가 사용되는 곳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 내려가 보지 않았지만, 다랭이 논 저 아래 바닷가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옛날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보니,,,한배미가 모자랐다.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벗어 놓았던 삿갓을 들었더니,
그밑에 논 한배미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을만큼 작은 논부터 300평이나 되는 큰 논까지 있는 다랭이 논이다
저 다랭이논 농사를 짓느라 얼마나 고단했을까?논 농사는 물이 필수인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물론 농사도 못 지었을터이고,
지금은 관광지화 되었지만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우리도 마을 위의 상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겨우 사먹고 왔으니...이곳도 다른 농어촌 처럼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났겠지,
농사지을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물이 부족했던지 벼농사를 이제 짓지않는 논들이 많이 보인다,
밭이 되었거나 아니면 잡초 무성한 빈터가 되어버린 다랭이 논...
바닷가 다랭이 논으로 난 길을 지게를 진 한 농부가 걸어가다가 뒤돌아 본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지게가 쓰이는구나,보아하니 적지않은 나이의 노인인데...지게 진 어깨가 안스럽다
하~ 묘기다~! 밭에 나가시는 할머니의 머리위에 큰 생수병이 얹혀 있다.
어서 가서 이 더위에도 땀 흘리며 일하는 아들에게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게 해야지...!
이 암수바위를 이곳사람들은 미륵불이라 부른다
이것을 "남근석 여근석" 이라고 아는 척 하는 외지인은 무식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조선 영조때 남해현령 조광진의 꿈에...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남해 가천에 묻혀 있는데, 그위로 우마(牛馬)가 다녀 불편하니 꺼내 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현령은 지하에 묻혀 있던 이바위들을 꺼내어 미륵불로 봉안하였다.
지금도 이 바위가 발견되었던 음력 10월 23일에 뱃길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벼농사를 짓지않는 한 다랭이 논에 염소 둥지가 지어졌다
답답한지 염소들이 지붕에 올라가 있다.대체 염소들은 어찌 올라갔을까? 옆의 풀밭도 놔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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