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난한 오늘 이병국
검지손가락 첫마디가 잘려나갔지만 아프진 않았다,다만 그곳에서 자란 꽃나무가 무거워
허리를 펼 수 없었다.사방에 흩어 놓은 햇볕에 머리가 헐었다.바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은
여전히 형태를 지니지 못했다
발등 위로 그들의 그림자가 지나간다.망막에 맺힌 먼 길로 뒷모습이 아른거린다.나는
허리를 펴지 못한다. 두 다리는 여백이 힘겹다.
연필로 그린 햇볕이 달력같은 얼굴로 피어 있다.뒤통수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양손
가득 길을 쥔 네가 흩날린다.뒷걸음치는 그림자가 꽃나무를 삼킨다.배는 고프지 않았다,
꽃이 떨어진다
<*동아일보 2013년1월 1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무궁화 2012.12.30.올림픽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