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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

고향에 찾아와도...

by 에디* 2018. 12. 21.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  두견화피는 언덕에 누워 풀피리 맞춰불던 옛동무요  흰구름 종달새에 그려보던 청운의 꿈을 어이지녀 가느냐  어이새워 가느냐

오포대...조선 중기에는 포탄이 없이 화약만 넣어 쏘아 시간을 알리던 것인데, 이 오포대는 1940년 경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고 1970년대까지도 낮 12시에 싸이렌을 울려서 시간을 알려 주었다 내 유년시절에도 뒷동산에 우뚝 서 있었던 것이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어서 너무도 반가웠다 <2018.12.18.옥천>

 

모교인 초등학교와 담도 없이 드나들었던 옥천경찰서 뒷모습

경찰서 뒷산의 방공호까지도 숨바꼭질을 하다가...어떤 친구가 권총을 주어오기도 했다

물론  선생님께 신고하고 반납했지만, 전쟁이 막 끝난 당시에는 총탄도 흔하던 시절이었다 

이 오래된 경찰서는 곧 새청사로 이전한다고 한다

 

옥천교...옥천역과 경찰서 사이에 있는 이 다리 밑에는 예전에 제법 모래사장이 있었다

그래서 추석이면 송아지를 상품으로 씨름대회가 열리기도 하던 곳  다리는 그동안 보수하였지만

다리 이름을 새긴 돌기둥은 옛모습 그대로다

 

초등학교 뒷동산은 묘지였었는데...桑田碧海와 같이 지금은 번듯한 공원이 되었다

 

모교인 삼양초등학교는 세월이 가도 마음의 고향과도 같이  고향에 가면 기웃거리는

교정에 들어서자 모르는 어린이들 셋이 막 뛰어와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꾸벅 절을 하고 뛰어갔

어린이들은 저리 순수하고 발랄한데, 어찌 자라가면서 괴물소년으로 변해가는지...알수 없다

 

오륙십년대 우리나라는 농민이 70%가 넘는 농업국가였다   농업고등학교였던 곳이 지금은 충북도립대학이 되었다

 

전후 피난민구호소로 학교건물처럼 긴 건물이 2동 있었던 곳에 지금은 서양식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마지막 남아있는 오십년전의 잔해... 저기서도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결혼을 하고 살았던 곳이다

 

내가 십대까지 살았던 집터는 쓸쓸한 빈터가 되었다

물려받은 형님이 팔고나서 새 주인은 집을 헐었는데,어쩐 일인지 새집을 짓지 못하고 오래동안 고추밭이나 배추밭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자리를 왜 와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죽을 날이 점점 가까워 오니까 ...라고?

 

집터 구석에는 아직도 물이 나오는 수도가 동파방지용 비닐을 뒤집어 쓴채 서 있다

그 옛날, 수도가에는 맨드라미와 분꽃,채송화가 피었었고, 마당에는 고추와 토마토를 심었었다

 

어린시절 뛰어놀았던 골목길...세월이 가도 낙후된 농촌의 모습이 보인다

 

골목을 가꾼다는 취지로 씨멘트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나뿌진 않다

 

장야리와 서대리 방향 양쪽에서 흘러오던 시냇물이 합수하는 지점

예전에는 물이 맑았고 물고기 잡으며 놀았던 곳인데 왜 지금은 수량이 저리 적은지...?

 

작년에 세상을 떠난 방아간집 딸 옥희가 살던 집은 간곳 없고 상가와 빌라가 서 있어 몰라보겠다

 

우리동네 뒷동산의 소나무는 수십년이 지나도 그다지 자라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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