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삼양리 옥천성당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제7호)

오랫만에 고향에 와서 일찍 성묘를 마치고, 카메라 배낭 하나 둘러메고, 이곳저곳 어릴적 추억을 찾아 헤메인다,
혼자이니 자유롭고, 오랫만에 햇살마저 눈부시다

어릴적에 할머니 손에 이끌려 몇번 드나 들었던 그 성당이고, 어머니가 다니셨고, 종교를 거부하시던 아버님마져
마지막에 결국 받아 들이셨던 옥천성당, 나는 거의 40년만에 찾아 왔나보다

옥천은 예나 지금이나 작은 읍이다 성당은 작은 읍 어디서나 보이는 언덕위에 있었고, 내가 다닌 중학교는 바로 성당 언덕 아래 있었다,
지금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은 그당시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후에 농업용수가 필요하지 않게 되어 매립해 버렸나 보다, 미술시간에 연못 주변까지 선생님따라 나와 성당주변을 그리고는 했었다

솔방울이 유난히 많이 달린 소나무 아래에서 멀리 성당을 바라 본다,1955년에 외방전교회 미국인 사제들에 의해 세워졌는데, 오랜 세월토록 허물지 않고 이렇게 오래 원형을 간직한채 고향 언덕을 지키고 있는 게 대견하고 고맙다,,
걸핏하면 튼튼한 건물도 헐고 새로 짓는게 요즘 세태가 아닌가?

중앙 현관 오른쪽 기둥에 네모난 작은 표지판이 바로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7호"라는 안내판이다.열살쯤 되었을 때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저 문을 드나 들었는데, 당시에는 의자가 없는 넓은 마루방이어서 쪼그리고 앉았다가 다리가 져려서 도망나오기도 했던 바로 그문이 그대로다,타일 한 장 붙어 있지않고 장식이라곤 없는 이 소박한 성당이 오늘따라 왜 이리 아름다워 보이는지...?

지금 장미는 없지만 넝쿨장미를 올린 아치를 배경으로 소화테레사 수녀님이 언덕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할머니의 간곡한 권유에도 나는 천주교에 안나가고 장로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나는 천주교도 좋다, 길은 달라도 같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 아닌가?

천주교를 사랑하는 이유는 특별히 감동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10년이상 편찮으시던 어느날, 나 혼자 고향집에 갔던 날이다. 어머니는 그날따라 안방에 상을 펴 놓고 하얀 보자기를 덮어 놓으신채 누군가 기다리고 계셨는데, 다름 아니고 옥천성당의 신부님과 수녀님이 매달 한번씩 병자를 위한 방문을 하시는 날이었다 신부님과 수녀님은 편찮으신 아버님께 간절한 위로와 기도를 해 주실 때,실은 옆방에서 나는 고맙고 감동받아 울었다.

이 계단의 경사도는 거의60도는 될 것이다, 길지는 않지만 손잡이를 잡고 급 경사를 올라가야 예수상을 만난다,
하기는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린 예수상 앞에서 그만한 고통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상전벽해라더니,연못이 메워져서 이루어진 여자 중학교 운동장 한켠에서 성당을 올려다 본다
50년전에 있던 집들 중에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되랴 ! 변함없이 언덕에 서있는 성당이 정말 고맙다

지용詩碑가 서있는 공원에서 새로지어 멋 없는 집 들 사이로 바라 본 성당,
어린 시절에는 꽤 높다란 언덕이었었는데...지금은 낮으막해 보이니, 내가 그만큼 늙어 버려서이지

성당 현관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한장 찍었다 <2010.9.13. 옥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