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아래 겨울나무 박남준
마음속에 길을 가지고 있었는가 고여 있는 사람이 있네
새들과 풀벌레 스스로 죄지은 것 없어 부끄러움 없는 것들이
다가가면 멈추고는 했네 오래 머물렀으나 바람 부는 데로 흔들렸네
할 일이 남은 모든 것들 몸을 낮춰 땅으로 내려앉는
가을이며 빈 몸의 겨울숲에 들어도 사내는 웅크린 채
아무래도 이건 아니야 사내는 다만 마음속의 길만을 생각했네
잊었다는 듯이 겨울이 오고 더불어 떠나는 자들의 시간이 바람처럼 길가에 자욱해도
사내는 다만 가지 못한 길만을 생각했네
겨울나무숲에 눕는다 너도 이렇게 이 자리에 붙박혀버렸느냐
그리하여 바람이 불 때마다 나부끼며 그렇게 바람 아래 서서
눈 내리고 흐린 날
겨울의 두물머리는 흑백사진이나 칼라 사진이나 차이가 없다
그 무성했던 잎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겨울햇살이 쏟아져도 발가벗은 나목이 추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