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 쯤 건너면 석모도에 이르고 그 섬에 낙가산(洛迦山) 보문사가 있다,
낙가산이란 이름은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인 보타락가산에서 왔으니, 그산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보문사가 있는 것이야 당연하다. 남해 보리암, 동해 양양 낙산사와 함께 3대 해수관음 도량으로 손 꼽힌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인 635년에 회정 대사가 열었다. 여러 창건설 중에서 가장 신뢰하는 창건설이다.
금강산 보덕굴에서 수행하고 있던 회정 스님이 이곳으로 옮겨와 절을 세우고 보니, 산세가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인 서천 사자국의 보타락가산과 흡사했다. 그래서 산 이름을 낙가산이라 했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수 없이 나투시는 관세음보살 원력의 광대무변함을 의미하는 ‘보문’을 도량의 이름으로 썼다고 한다
새로 단청을 올렸는지 아니면 새로 지었는지 화려한 범종각이 눈길을 끈다
언덕을 이용하여 지은 4층의 "무설재중전" 옆모습도 아름답다, 1층에 종무소가 있고 아래층에 공양간과 신도숙소가 있다
불전4물중에 범종이 걸린 범종각의 화려한 모습
보문사의 중심건물인 극락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내부면적 60평으로 과연 웅장한 규모이다
극락보전 내부를 들여다 보니,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불상이 또 있을까 싶게 화려하다, 가운데에 아미타부처님과 좌우협시로 대세지보살,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고,아름다운 탱화와 상단 후편에는 총 3,000분의 옥부처님이 모셔져 있어 장엄함을 더해주고 있다
극락보전 출입문의 채색 문살도 아름답다
천인대에 오백나한과 함께 조성된 전각으로 와불을 모시고 있다
와불의 머리 부분.....와불전에 모셔진 와불은, 열반 당시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자연석에 그대로 조각하여 모셨으며 전체 신장 10m,열반대 길이 12m로 규모가 커서 카메라 화각에 다 담을 수가 없고, 공간이 넓어서 와불 뒤로 돌며 참배 할 수가 있다
오백 나한전 뒤에서 바라본 보문사 전경...천인대는 길이 40m,폭 5m의 큰 바위로 창건 이후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이용되어 왔는데, 그 크기가 넓어서 천명이 앉을 수 있다 하여 천인대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오백 나한은 2009년에 와불전과 함께 천인대에 조성 되었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보탑을 중앙에 두고 오백 나한이 감싸고 있는 형상으로 조성 되었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증득한 존자를 말하며 해탈하여 더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한다,오백 나한상은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재질은 석재에 채색을 입힌 것 같다
보문사 향나무...석실 앞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이 나무는 밑동 지름이 2.1m이며 나무의 모습이 용트림 하는 듯한 형상으로 6.25 전쟁 중에 나무가 죽은 것처럼 보이다가 3년 후에 소생하였다고 한다
보문사 석실...신라 선덕여왕 4년(635) 희정대사가 처음 건립한 석굴사원으로 천연 동굴을 이용하여 동굴안에 석가모니불과 미륵, 보살, 나한상을 모셨다, 전설에 의하면...이들 석불들은 신라 선덕여왕때 어떤 어부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들을 꿈에서 본대로 모셨더니 모두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한 때 보문사의 승려와 수도자들이 300명에 이르렀다는데 그 때 사용되었던 맷돌이 남아 있다 지름이 69cm,두께가 20cm정도로 보통 맷돌의 2배 크기 정도다
나한전에서 내려다 본 극락보전의 옆모습
보통 "눈섶바위"라고 부르는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을 아래서 올려다 본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이르게 된다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에 이 마애불을 조성하였다,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한 보관을 쓰고, 손에는 세속의 번뇌를 씻어주는 물이 담긴 정병을 든 관음보살이 연꽃 받침 위에 앉아 있으며, 어깨에 법의를 걸치고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마애석불좌상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보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