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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

세상 끝의 봄

by 에디* 2013. 4. 17.

 

세상 끝의 봄                               김병호

 

수도원 뒤뜰에서

견습 수녀가 비질을 한다

 

목련나무 한 그루

툭,툭, 시시한 농담을 던진다

 

꽃잎은 금세 멍이 들고

수녀는 떨어진 얼굴을 지운다

 

샛길 하나 없이

봄이 진다

 

이편에서 살아보기도 전에

늙어버린, 꽃이 다 그늘인 시절

 

밤새 혼자 싼 보따리처럼

깡마른 가지에 목련이 얹혀 있다

 

여직 기다리는 게 있냐고

물어보는 햇살

 

담장 밖의 희미한 기척들이

물큰물큰 돋는,세상 끝의 오후

 

 

봄 풍경으로 "세상의 모든 가을"을 보여 주는 듯, 정갈하고 고적한 시다,

밤새 혼자 싼 보따리처럼... 어쩌면 이렇게 표현했을까?  견습 수녀이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의 마음 한 자리를 엿보게 하는 한 편,깡마른 나뭇가지에 해쓱하게 얹힌 목련꽃이 선연히 떠 오른다, "꽃이 다 그늘인 시절" 젊음이 다 그늘인 어떤 인생, 봄기운으로 생동하는 속세의 기척에 수도원 담장 안 오후의 햇살이 세상 끝인 양 아득해진다  아득하면 깊으리,시 속의 견습 수녀도, 그리고 젊어 본 적 없이 나이 든, 봄여름 없이 훌쩍 가을인 사람들도 그 삶이 더욱 깊으리라  <황인숙>

 

 

<사진  백목련  2013.4.16. 원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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