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권애숙
어느 왕정시대
직간하는 선비의 못다 쓴 상소문을 위해
지금 여기 필봉을 휘두르고 있구나
반만년 호곡으로 갈아낸
먹보라 핏물 꾹꾹 찍어
창공을 적시는 분노
때도 없이 부는 황사바람
그대 붓끝을 분질러도
새는 날이면 또 다시 핏물을 쏟는
기개여
부끄럽구나
그대 앞에 서면
한 자루 붓도 가지지 못한 건달
돌아보면 하늘은
빈 두루마리 펼치고 있다
작년 오월에도 붓꽃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이 시를 적어 놓았었다.
시절은 속절없이 변해가는 데도, 성내천의 붓꽃은 변함없이 찬란하게 피었다.
왕조시대 조선 선비는 목숨을 내어 놓고 직간하는 상소문을 써서 임금께 올렸다는 이야기를 안다
그 선비의 먹물 뚝뚝 떨어지는 날카로운 붓의 형상을 닮았다는 붓꽃은
이 시대의 나약하고 권력만 쫒는 지식인들을 나무라고나 있지 않는지...?
붓꽃이 어우러져 피고 있는 성내천이 더욱 좁아 보이는 것은...꽃 때문만이 아니고, 물장난하는 소년들의 함성 탓이다
팔뚝만한 잉어들이 노니는 것을 쫒고 있지만 잉어들도 그리 만만하게 잡혀 주지는 않는 듯...
한 참을 바라 보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소년들은 돌아간다,
아마도 소년들은 봄의 흥에 겨워 물장난을 쳤지만, 내심 잉어를 정말로 잡을 마음은 없었다
문득 50년대에 저만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학교 다녀와서 학원도 안가고, 과외공부도 하지 않고, 피아노 레슨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고, 들로 시냇가로 나가 뛰어 놀았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자라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제법 살기 괜찮은 나라로 만들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