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바라'의 성지, 청계사
통일신라 때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로 청계산 남쪽 태봉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1284년(고려 충렬왕 10)에 불심이 돈독한 당대의 세력가였던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인규(趙仁規, 1227~1308)의 원력에 의하여 중창되어 이때 사세가 확대되었고 금자법화경 사경과 많은 불화가 제작되어 봉안하였으며 1880년 음곡스님에 의해 중건되었다.
지난 2000년 10월 극락보전에 봉안된 아미타삼존불 가운데 관음보살상의 상호 왼쪽 눈썹 주변에 우담바라꽃이 피어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 3천년 만에 한 번 핀다는 전설 속의 꽃인 우담바라는 영화스럽고 상서로운 일이 생길 징조로 알려져 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조사의 혜맥을 전승한 근대 선종의 중흥조인 경허선사가 출가 득도하여 이땅에 등불을 밝혔고 만공선사가 주석하여 선중의 지평을 넓혔다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 신라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사찰 경내에 있는 석등과 부도 일부가 신라시대 때 것으로 추정되어 신라시대의 창건설을 뒷받침 하고 있다. 조선 연산군 시절에 사찰 폐쇄령을 내렸을 때 봉은사(奉恩寺)를 대신해 정법호지도량(正法護持道場)이 되어 선종본찰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청계사는 1689년(숙종 15) 3월과 1876년(고종 13) 3월 두 차례의 화재로 수십칸의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명맥을 유지해 왔다
1955년 아연 스님과 이후 월덕, 탄성 스님 등의 중창불사로 현재의 사찰모습을 갖추었으며,종각에 있는 범종은 1701년 주조된 것으로 일제 때 반출되어 녹여질 뻔한 것을 봉은사로 옮겨 사용하다가 1975년 청계사로 옮겨져 봉안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었다.
청계사 범종각 범종각 안의 동종 명칭은 의왕 청계사 동종 으로 보물 11-7호 지정되었으며 1701년 숙종 27년에 조성된 것이다
청계사 수각(水閣)에도 주홍빛 연등이 예쁘게 걸려 있고, 돌 그릇에도 감로수가 찰랑찰랑 넘치고 있다
상가의 간판처럼 현수막이 내 걸린 축대가 조금 거슬리는 것은 내 마음 탓인가?
사찰 중심에 자리잡은 극락보전(極樂寶殿)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중수할 때 대들보에서 ‘庚子 三年 三月'이라는 글씨가 확인되어 1900년(광무 4)에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전각 외부의 벽화로는 수행자가 도를 깨우치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아 헤매는 것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심우도(尋牛圖) 10폭이 채색 없이 수묵화(水墨?)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매우 흐려져 있어 자세히 알아보기 어렵다.
정면 처마 아래에 걸린 극락보전(極樂寶殿) 편액은 도서와 관지가 없어 작자와 쓴 시기를 알 수 없지만 글씨로 보아서 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해서체의 글씨가 별 다른 꾸밈없이 단정하면서 힘이 있어 화려함보다는 내실을 느끼게 한다
청계사 극락보전 주련
극락당전 만월용(極樂堂前滿月容)극락전앞에 걸린 보름달과 같은 부처님 얼굴
옥호금생조허공(玉毫金色照虛空)옥호에 금빛 찬란한 빛 내어 허공을 비추시네
약인일념칭명호(若人一念稱名號)만일 사람이 일념으로 부처님 이름 외운다면
번각원성무량겁(煩刻圓成無量劫)번뇌 담박에 없어지고 원만성취 이루리
해 넘어갈 무렵 따뜻한 햇살과 담소를 나누는 스님들
극락보전 뒷뜰에는 미니어쳐 불상들과 돌하루방이 길게 배치되어 있고...
청계사의 명물인 와불의 모습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사랑을 표현하는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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