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에 있는 3년산성(三年山城)은 사적 제 23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유적지입니다,
그런데 뭐 이렇게 새거지? 그리고 너무나 미끈하게 잘 쌓아서 도대체 신라석성으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일천 몇백년 전 성이 2백여년 전의 수원화성보다도 더 잘 쌓았다니... 너무나 옛스럽지가 않은 게 험입니다 <2014.8.2.충북 보은>
성의 서문이 있던 西門址를 지나 오른쪽으로 바라 본 성의 모습...성벽의 왼편에는 아미지(蛾眉池)라는 못이 있고,
성 중앙의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성 안내소가 있으며, 보은사(報恩寺) 절에 이르릅니다
서문지(西門址)...산성의 주 출입문으로 여겨지는 서문이 있던 터, 성 반대쪽에 南門址와 東門址도 있습니다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조되었고,소지마립간 8년(486)에 아찬 실죽이 장정 3천명을 동원하여 대규모로 수리하였습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되기를 축성을 시작한지 3년만에 완성되었다 하여 삼년산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하며,신라가 서북지방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전초기지였다고 합니다
태종 무열왕이 삼국통일 전쟁때(654~661) 당나라 사신 왕문도를 접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고, 고려 태조 왕건은 이 성을 점령하려다가 크게 패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축산성으로 규모는 둘레 1680m,최고높이 22m,폭 8~10m,에 이르며, 동서남북 4개소에 문지와 다수의 건물터가 남아 있고 성 인근에는 대규모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삼년산성은 여러개의 반원형 치성(雉城)과 성내 배수를 위한 수구,등 특이한 축성양식과 축성및 수리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어 우리나라 고대 축성법 연구에 귀중한 산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합니다...정말로 신라시대의 축성및 수리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을까? 믿겨지지 않지만 산성 안내판에 그리 쓰여 있습니다
석성의 폭이 10m에 이를만큼 정말 튼튼하게 쌓았습니다, 성 아래 멀리 보은 읍내가 보입니다
해설사가 말하기를, 만리장성보다 더 견고하게 축성하였다는데,1980년 보은 지역의 대홍수 때 일부가 무너져 보수를 하였답니다
오늘 여러곳을 방문했는데, 동행한 김박사에게 부탁해서 이 한 장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일천 수백년 된 석성에 앉아, 흘러가는 세월과 면면이 이어온 역사에 대하여,그리고 앞서 살고 간 선인들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