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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

간월도

by 에디* 2015. 10. 7.

간월암의 유래

 

간월암은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의 왕사 무학스님이 창건한 암자이다.  당시의 무학스님이 이곳에서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치셨다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였고 따라서 섬 이름도 간월도라고 하였다고 한다.  

무학스님은 충남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가 고향이다, 스님이  어머니 엄씨 태중에 있을 때 부친이 국채 빚을 갚을길 없자 피신하여, 사령이 부인을 대신 서산감영으로 호송하여 가던 중 갑자기 산기를 느껴 쉴 곳을 찾게 되었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눈이 산천을 덮었는데 오직 한 곳에만 눈이 없어 이곳에서 몸을 풀고 아이를 옷가지로 덮어두고 현감에 이르렀다. 부인이 몹시 괴로워하는 것을 본 원이 이상히 여겨 그 연유를 물어 자초지종을 듣고는 인간의 도리로 어찌 그럴 수 있는가 하고 부인을 아이가 있는 곳으로 돌려 보냈다. 

부인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기 있는 곳에 도착해 보니, 큰 학이 날개를 펴서 아기를 보호하고 있는지라  원에게 사실을 그대로 고하였다. 원은 그 이야기를 듣고 몹시 상서로운 일이라 하여 아기의 이름을 무학(舞鶴)이라고 지어 주었다. 후에 무학스님이 탄생한 곳을 학돌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무학이 20세에 나옹스님과 인연이 되어 출가를 하게 되었으니 이 때가 고려 공민왕 3년(서기 1253년)이다.

스님은  간월암에 토굴을 지어 열심히 수도하던차 달을 보고 도를 깨우치니 나옹스님이 "너는 더 배울게 없다."하시며 법호를 무학(無學)이라고 지어 주셨다.

 

고려의 국운이 시들어 갈 무렵 스님께서는 함경도 백연암에서 이성계에게 500일 기도를 올리게 하였다.

이성계가 기도를 마치는 날 석가래 3개를 짊어질 이상한 꿈을 해몽하시고 이미 그가 왕이 될 것을 짐작하셨다. 이성계가 왕으로 등극한 후 무학스님께서는 한양을 도읍지로 잡으시고 창여문 첫자를  창(蒼)字로 하시고 경복궁울 28칸으로 하시니 이미 28대 왕운을 짐작한 것이었다.

 

당시에 조정에서는 간월도 황도 등을 사제지로 정하여 스님께 드렸으며 그 후 많은 수도인들이 이곳 간월암에서 득력을 하였다.조선왕조 말엽 이 암자가 완전히 폐해된 것을 1941년 만공선사께서 선승의 안목을 기리시며 복구하실 뜻을 비치시매 마벽초선사께서 그뜻을 받들어 크게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간월암  201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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