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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

화성행궁

by 에디* 2015. 11. 13.

정조의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과 팔달산도 단풍으로 곱게 물들었

사적 제478호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 되었으며,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1794년부터 96년(정조 18년~20년)에 걸친 화성축성 기간에 화성행궁을 확대하여 완성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현재의 융릉)을 13차례나 찾았던 정조는 참배 기간 내 화성행궁에서 유숙하였다. <2015.11.9. 수원>

 

화성행궁은 567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그러나 일제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완료되어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안에서 바라본 신풍루

 

신풍루...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1790(정조 14)에 루를 세우고 진남루(鎭南樓)라고 하였는데, 1795년 정조는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여 조윤형으로 하여금 다시 편액을 쓰게 하였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나라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 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이다.

 

중양문...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다. 1790년(정조 14)에 완성되었으며,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 좌협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 좌우로 긴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 하였다.

 

봉수당은 화성 행궁의 정전(正殿)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하며 1795년(정조 19) 정조는 혜경궁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 하였고, 이 때 정조는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였다.

 

봉수당 현판...이 건물은 원래 1789년(정조 13)8월 19일 상량하고 9월 25일 완공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파괴된 봉수당은 1997년 복원 되었다. 정조는 혜경궁 회갑연을 마치고 9년뒤인 1804년에 혜경궁의 70수연(壽宴) 진찬을 봉수당에서 갖겠으니 사용할 물건을 잘 보관하도록 지시하였다.

 

장락당...1794년(정조 18) 화성 성역 중에 완성되었으며, 봉수당 남쪽에 있는데 봉수당의 서남쪽 지붕과 겹쳐 있으며, 동향으로 세워졌다. 장락당은 전한의 도읍인 장안성의 궁전이었던 장락궁에서 이름을 따 왔다.
혜경궁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였던 정조는 한나라 태후의 거처였던 장락궁의 이름을 따 행궁의 내전인 장락당의 편액을 직접 써서 걸었다. 실제로 1795(정조 19) 을묘원행시에 혜경궁은 이곳에서 머물렀다.

 

운한각...화령전(華寧殿)의 정전(正殿)으로(사적 제115호) 1801년(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정조의 영전(影殿)이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달리 영전은 보통 선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생전에 계실 때와 같이 봉안하는 곳이다.

앞에는 제사때 악공들이 연주할 수 있는 월대가 있고 3개의 계단길이 있는데 가운데는 혼백많이 다닐 수 있는 신도이며 1801년에 세워진 조선 후기의 대표전 건물이라 한다

 

담밖에서 본 운한각...雲漢은 임금이 가믐을 걱정하여 하늘에 기우제를 올릴 때 불려졌다는 시경의 싯구에서 따왔다

 

행궁 뒤로 이어지는 팔달산은 불 붙은 듯 하고 꼭대기에 서장대가 보인다

 

낙남헌... 일제강점기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건축물중 하나이며, 낙남헌이란 이름은 후한의 광무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궁궐 이름을 '남궁(南宮)'이라 한 것에서 따온 것으로 1794년(정조 18)에 완공되었다.
1795년(정조 19)을묘원행시에는 각종 행사가 이 곳 낙남헌에서 치러졌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의 회식을 이 곳에서 하였으며,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문과 5명과 무과 56명을 선발 하였는데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 주는 행사도 이 곳에서 있었다.

 

좌익문...좌익문은 중양문 앞에 있는데, '좌익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으로 내삼문을 바로 앞에서 도(道)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中三門)이다. 1790년 완성되었고 편액은 정동준이 정조의 명을 받들어 썼다. 

 

조명미가 뛰어나게 아름답다는 운한각의 뒤쪽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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