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을 며칠 앞둔 날 서대문 독립공원을 돌아 보았다
독립공원 입구의 독립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돌문으로 서재필을 중심으로 한 독립협회가 우리나라의 영구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국민의 헌금으로 영은문을 헐고 1897년 그 자리에 세웠으며 197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2016.2.26.>
삼일 독립선언 기념탑...3.1독립선언기념탑은 원래 탑골공원에 있었다. 1963년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주관하여 국민의 성금으로 그해 8월15일 제막되었다가 1979년 공원 정비사업때 뜻하지 않게 철거되었다. 이에 각계의 복원 건의가 잇달아 그 뜻을 살려 항일운동의 터전인 이곳 독립공원에 원상태로 다시 세웠다.
독립관(현충사)...이 건물은 조선시대 중국 사신에게 영접연과 전송연을 베풀던'모화관(慕華館)'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1894년 갑오경장 뒤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가 1897년 5월에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건물을 고치고, 황태자(순종)은 '독립관'이라고 쓴 현관을 하사하였으며, 독립협회의 사무실 겸 집회소로 사용하였다.
독립관은 개화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자주독립.민족문화 선양.이권양여반대.자유언론신장.신교육 진흥.산업개발 등을 주제로 1898년말까지 매주 토론회가 개최되었으며, 자주.민권,자강사상과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시민대중을 계몽하는 집회장으로 사용하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철거되었다. 독립관의 원래 위치는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350m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으나 현재 위치에 한식 목조건물로 복원하여 순국선열들의 위패(位牌)봉안과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고교생일 때 선생님이 늘 하시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우리 민족의 자랑거리 두가지 이야기다
"우리 민족의 자랑 하나는 한글이고 두번째는 삼일운동"이라는 말이다.
만약에 나라를 빼앗기고도 "삼일운동"이 없었다면...부끄러운 민족 이라는 말씀 이었다
삼일운동기념탑에서 바라 본 독립문...도로교통 문제로 원래 자리에서 옮기기도 했지만 고가도로가 지나가는 모습이 어쩐지 독립문을 초라하게 하는 것 같다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갖은 옥고를 치르고 마침내 목숨까지 빼앗겼던 서대문형무소는 우리민족 독립의 현장이며 살아있는 역사의 터이다. 불행한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난날을 확실하게 되돌아보고 교훈을 삼아야 할 것이다. 서대문구에서는 이곳의 옥사와 사형장, 망루등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악명 높았던 구 보안과 건물을 보수하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새롭게 개관하였다.
서대문독립공원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비롯하여 사적 제32호 독립문과 사적 제33호 영은문주초,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등이 있는 우리민족의 성지라고 할 수 있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통해서 조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과 선열들의 희생으로 굽히지 않았던 자주독립 정신을 깨닫는 역사의 산 교육장라 하겠다
원래의 서대문형무소 모형...
나무판에 조각한 태극기
꼼꼼히 돌아볼 시간이 없었으나 유관순열사의 모습만은 담아왔다
감옥,그리고 취조실,고문실...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저 붉은 옥사에서 고통을 당했을까?
격벽장...수감자들이 운동할 때 대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감시를 쉽게 하기 위해 격벽을 쌓고 분리수용하여 운동하게 한 시설
감시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