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시절 살았던 집은 10년 전쯤 팔렸고,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하다
괜히 이 날 그 자리에 가 보고 싶었다.집을 산 사람이 옛집을 헐어내고 아직 새집을 짓지 않은 듯, 빈 터에 파가 심겨져 있다
하늘로 가신 할머님과 부모님의 혼령이 맴돌것 같은 곳 나도 나이를 먹으니 귀소본능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가? <2016.3.19.>
옛집이 있던 곳으로 가는 골목길은 변한 게 별로 없다 50년대에 저 길을 걷던 소년은 이제 노인이 되어 돌아왔다
내 고향 마을은 "새터"라고 불렀었는데 한자로 옮겨서 새(新)터(基) 新基里가 되었다
그 말 그대로 한국전쟁 후 새로 조성된 마을이란 의미로 읍내의 변두리에 해당되었다
어린시절 뛰어놀던 골목길...땅도 넓고 비싸지 않은데 시골에 왜 고층아파트들을 짓는지 모른다
나의 모교 삼양초등학교...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았네
어린시절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생각했던 그 푸라타나스가 사라진게 무척 아쉽다
물려받은 손바닥만한 집터에 누군가 마늘농사를 짓고 있다..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는 땅
충청지방까지 널리 심겨진 매실나무...열매도 유용하고 꽃도 볼만한 매실나무
부로크 담장에 아주 예쁜 벽화를 그려 놓았네
무너지기 직전으로 보이는 퇴락한 주택...예전에 저 곳에는 국민학교 교실 같이 길고, 방 한칸에 부엌 하나로 이루어진 피난민구호소가 있었는데 어느날 화재로 다 타버리고 저런 흙벽돌 집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이런저런 사유들로 사람들이 떠난 듯...
어린시절 우리집 바로 뒤에 있었던 집....저기서도 아가들이 태어났고 단란했던 가족도 있었다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이제 곧 저 흙집들은 헐리우고 멀쩡한 아파트가 들어서겠다
50년대에 지어진 흙집과 현대아파트가 공존한다
일년에 한 두번쯤, 일부러 두어시간동안 고향 읍내를 걸어서 돌아보는데 아는 이를 전혀 만나지 못한다,
그만치 고향읍도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가 된 것이고 집도 옛집은 거의 보기 어렵다,그래서 쓰러져가는 저 옛 집에까지 정이 가는 모양이다
유년기 집이 있던 빈터 너머로 보이는 이종사촌형닙댁...
사촌형 부부는 작년에 모두 세상을 떠나 저 집도 빈집이 되었고, 감나무와 가죽나무는 여전하다
친구가 살던 스레트집...친구는 젊었을 적에 밥보다 더 술을 좋와하더니, 40대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고향이라 해도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생소한 읍내
예전에 어머니가 채취해서 맛난 나물로 무쳐내든 머위는 아직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듯 꽃몽오리가 탐스럽다
마당 구석에 있던 수도는 꽁꽁 싸맨채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