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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

용주사

by 에디* 2017. 1. 5.

경기 화성시에 자리잡고 있는 용주사를 모르시는 분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  원래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였는데  병자호란 때 소실된후 폐사되었다가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뒤주에 갇힌 채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 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설법을 듣게되고, 이에 감동, 부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면서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보경스님을 팔도도화주로 삼아 이곳에 절을 지어 현릉원의 능사(陵寺)로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호하고 명복을 빌게 하였다

 

용주사 오층석탑... 효행박물관 앞에 위치한 높이 4.5m의 이 화강암 5층석탑은 부근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전한다.

대개의 석탑이 가람의 입구나 법당 앞에 위치하는데 반해 이 석탑은 용주사 가람의 앞쪽에 자리하고 있어 역시 다른 곳에서 이전해 온 것임을 알게 한다.

제일 아래에 지대석이 있고 그 위에 하대석이 놓였는데, 지대석의 사방 각 면에는 귀꽃모양의 안상(眼象)을 3개씩 새겼고 그 위 기단면석에는 위패(位牌)형의 사각을 모각하였다. 1층옥신에는 문비(門扉)가 새겨져 있고 1·2·3층의 옥개석 모두에는 4단씩의 옥개받침이 있으나 4층만은 2단으로 이루어졌다.5층의 옥개석과 맨 위의 상륜부는 하나의 돌로써 조성하여 간략화하였고 각 옥개석의 처마끝에는 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전이 없는 수직으로 처리하였으며. 이같은  탑의 특징 등에서 고려시대의 석탑임을 알 수 있다.

 

 

용주사 홍살문...왕실의 능, 원, 묘, 궁전 관아 등의 입구에 붉은 칠을 한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연결한 보에 붉은 살을 박은 형태로 세워 경의를 표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문이다. 다른 사찰과 달리 용주사에 홍살문이 있었던 이유는 정조대왕께서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護聖殿)을 건립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용주사에서는 사도세자와 헌경왕후(혜경궁홍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시고 일 년에 여섯 번의 재를 모셔 왔다 한다. 그러나 1907년을 끝으로 일제강점기 이후로 중단되어 왔다. 100년 만에 사도세자 제246주기 제향을 모시면서 홍살문을 복원하고, 호성전의 현판을 제막하는 것은 효찰대본산 용주사 창건 당시의 모습을 회복하여 우리나라 효문화를 선양하는 한편, 정조대왕께서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못 다한 효를 사후에라도 실천하고자 하였던 뜻을 계승하고자 함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삼문을 맞게 된다. 마치 양반집 대가 같은 이 건물은 좌우에 줄행랑을 지닌 맞배지붕 양식으로 사도세자 현륭원의 재궁(齋宮)으로 지어진 절이기 때문에 이러한 건축양식을 지닌 것 같다.

동서의 옆문과 중앙의 대문에 각각 문이 나 있어 삼문이라 부르며, 정면 도리 위에는 죽농(竹濃) 안순환(安淳煥)의 글씨로 '龍珠寺'라는 현판이 자리하는데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글씨가 인상적이며, 삼문의 네 기둥은 상단부는 목재이고 하단부는 석재의 초석인데 유난히 높고 큰 편이다. 네 기둥에는 '龍珠寺佛'의 네 자를 각각 첫 글자로 한 시구가 주련으로 걸려있는데 역시 안순환의 글씨다.

 

대웅보전 을 중심으로 바라 본 전각들...앞 부터 법고각,대웅보전 천불전, 범종각

 

불교가 정치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던  조선 당시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 세웠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낙성식날 저녁에 정조가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라 불렀다,

그리하여 용주사는 효심의 본찰로서 불심과 효심이 한데 어우러지게 되었고, 전국 5규정소(糾正所:승려의 생활을 감독하는 곳) 중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했으며, 팔로도승원(八路都僧院)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했다.일찍이 31본산의 하나였으며 현재는 수원, 용인, 안양 등 경기도 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80여개의 말사,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용주사 대웅보전... 사찰내에서 중심되는 부처님을 모신 건물을 대웅전이라 부르는데, 정확한 의미에서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곳을 가리킨다.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부를 때 '대영웅 석가모니'라 하고 줄여서 '대웅'이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이 계신 곳만을 지칭하는 말이다.

용주사는 '대영웅 석가모니불을 모신 보배로운 전각'이라는 뜻에서 대웅보전이라고 이름하였으며,1790년 용주사의 창건과 함께 지어진 유서깊은 건물로, 보경당(寶鏡堂) 사일(獅馹)스님이 팔도도화주(八道都化主)를 맡아 대웅보전을 비롯한 145칸의 전각을 함께 지었다.

 

천불전...과거에 노전(爐殿), 또는 향로전(香爐殿)이 있던 자리에 불사를 하여 93년 3월에 완성하고 천불전(千佛殿)이라 이름하였으며. 내부에 천개의 작은 불상을 봉안하였다. 건물 내부의 중앙에는 석가모니, 비로자나 그리고 아미타여래의 삼세불을 봉안하였으며, 이 삼세불은 대웅전에 모셔진 삼세불과 그 형식을 같이하여 조성한 것이다.

 

국보 제120호 용주사 범종...범종은 절에서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거나 모든 이에게 때를 알려주는 것이었다가 그 소리가 신묘하여 예불의식 등에 쓰이게 되었는데, 범종의 소리는 중생의 마음속을 깊이 울려 어리석은 몸과 마음을 자비로운 부처님의 품으로 이끌게 한다.

이처럼 종소리만 들어도 번뇌가 없어지고 지혜가 자라난다고 하여 종소리 자체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대웅보전의 계단을 올라 왼쪽을 향하면 범종각이 있는데. 1911년 무렵에는 보신각(普信閣)이라고 하였으며, 이 전각안의 범종은 국보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는 귀중한 문화재다.

 

부모은중경탑...용주사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정조를 불교에 귀의 시킨 "부모은중경"이라 하겠다

부모은중경판은 용주사의 상징적인 유물이라 할 수 있는데,보경스님으로 부터 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고 감명을 받은 정조는 은중경 목판본을 간행토록 하였다 한다,현재  용주사에는 부모은중경 목판 54매,동판 7매,석판 24매 합하여 3종류 85매가 있다고 한다

 

지장전...저승세계를 상징하는 사찰의 건물을 명부전이라 하는데, 그 내부에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어서 시왕전이라 하기도 하고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다고 해서 지장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용주사에는 지장전이라고 이름하여 지장보살 시왕, 판관 등을 봉안하고 있다

 

전강대종사 사리탑...보기 드물게 화려한 사리탑

 

전에 보았던 용주사 대웅전 앞의 천연기념물 제 264호 회양목을 살펴 보니 완전 말라 죽은 듯 나무 등걸만 보였다

워낙 노쇠하여 천수를 다한 모양으로 2002년에 천연기념물 지정도 해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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