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과 詩 한 편

한계령에서

by 에디* 2018. 1. 23.

한계령에서         정덕수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 육천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내리네


,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나는 시인 정덕수를  모른다, 중앙의 문단과 먼, 한계령 오색 약수터 인근 마을에서 사진 찍고, 시를 쓰며, 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학력이 변변치 않았던 18살 청년 정덕수는  고향인 강원도 양양 오색약수터 마을에서, 시에서처럼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한계령을 넘다가 오색을 바라보며 문득  떠오른 시상을 적은 게 이 시라고 한다어린 시절 회고부터 가정 사정까지 그리고  산을 타며 느낀 여러 상념들…… 열여덟 청년의 진솔한 회한이 담겼다.

하덕규 작곡/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의  원시가 정덕수의  "한계령에서1"이다.
시도 좋고 노래도 좋와서 2014년에 한계령을 넘으며 찍었던 사진 몇장을 찾아서 엮어 보았다

 

 

 

 

'사진과 詩 한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당화  (0) 2018.06.27
돌이 부처가 되는 것을  (0) 2018.05.29
윤회의 바다  (0) 2017.12.27
불이법문(不二法門)  (0) 2017.12.05
자화상  (0) 2017.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