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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

영랑생가

by 에디* 2018. 4. 26.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7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 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와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2018.4.12.전남 강진>

 

영랑은 1930년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정지용,박영철,이하윤,정인보,변영로,김현구,신석정,허보,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우리 현대시의 새장을 열었다. 1934년 "문학"지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하였으며 1934년 "영랑시집"을 1949년에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영랑님이 노래 하였던 모란은 아직 피지 않았고 생가 뒤에는 붉은 동백만이 피고 지고 있었다

 

동백꽃이 후두둑...떨어져 뒹구는 뒷뜰...

 

모란과 더불어 영랑에게 시의 소재가 되었던 동백

 

영랑생가 사랑채

 

땅에 떨어진 동백도 아직은 동백이다

 

생가 뒤에는 모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 으로 가는 길에서 본 생가

 

 

시문학파 3인상...1930년 3월 시문학지 창간을 주도했던 용아 박용철(오른쪽),정지용(가운데),영랑 김윤식(왼쪽),시인이다, 이들이 창간한 시문학지는 당대에 풍미했던 낭만주의 문예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이 땅에 순수문학을 뿌리내리게 한 모태가 되었다

 

 

세계모란공원의 영랑 김윤식 선생상...서울에서 휘문의숙 재학시절 영랑은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숨겨가지고 강진으로 내려와  독립운동인 "강진 4.4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될 때까지 창씨개명과,신사참배,삭발령을 거부한채 흠결없는 조선인으로 살았으며  6.25 때 부상으로 1950.9.29. 서울에서 47의 아까운 나이에 타계하였다

 

2008년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생가 주변의 모란은 피지 않았으나 모란공원에 핀 화려한 모란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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