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異山 泉隱寺라고 쓴 일주문의 편액 글씨에 주목해 보시기 바란다처음에 이 절의 이름은 감로사(甘露寺)였을만큼 물 맛 좋은 샘이 있었다, 후에 절을 중수할 무렵 샘가에 큰 구렁이가 나타나 사람들이 무서워하자 한 스님이 죽였는데, 그 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泉隱寺)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은 크게 중창 했지만 절에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여,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그 후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2018.4.2.)
일주문을 지나면 수홍루와 피안교가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위로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 다리를 피안교라 부른다. 이쪽은 온갖 번뇌에 휩싸여 생사윤회하는 고해의 언덕이고 다리 건너편은 고통과 근심이 없는 불·보살의 세계다. 따라서 피안교란 열반의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 건너는 다리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사찰에 갈 때, 절 입구의 피안교를 무심히 건너는 게 아니다. 마음을 청정하게 씻고 이제 다리를 건너면 진리와 광명이 충만한 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천은사에는 그 다리 위에 2층 누각인 수홍루가 있다. 조선후기에 지어진 수홍루는 계곡과 어우러져서 천은사를 대표하는 경치라고 할 만큼 아릅답다. 정면 현판의 글씨는 염제(念齊) 선생의 글씨라 한다
천은사 절 쪽에서 바라본 수홍루
과연 아름다운 천은사 수홍루의 풍경이다
천왕문에서 마당을 보면 정면 2층의 보제루가 당당하게 서 있다. 보제루란 대중의 법요식(法要式) 집회소로 사용하는 건물인데,내부는 마루를 깐 강당형식이다. 현판은 1934년 호남 명필 이삼만(李三晩)이 썼으며,현판 글씨가 단아한 보제루와 잘 어울리고 있다.
천은사는 전남 구례, 지리산 서남쪽에 위치한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828년(흥덕왕 3)에 덕운대사가 창건했는데 극락보전 앞뜰에 있던 샘물이 감로와 같다고 하여 감로사라고 했는데, 875년(헌강왕 1) 도선대사가 중축한 이래 여러 차례 중건·중수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78년(숙종 4) 중건했는데, 그 사이 샘이 자취를 감추자 절이름을 천은사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건물들은 대부분 1774년(영조 50) 재건한 것으로 극락보전·팔상전·진영당·칠성각·첨성각·회승당·보제루·일주문·수홍문 등이 있다.
보제루 맞은 편에는 극락보전이 보인다. 極樂寶殿은 서방정토의 교주이며 중생들의 왕생극락을 인도하시는 아미타부처님과 그 협시보살들을 모신 법당이다. 사찰에 따라서 미타전, 아미타전, 무량수전, 수광전이라고도 하는데 천은사는 대웅전 대신 극락보전이 사찰의 주된 전각이라 하겠다. 극락보전은1774년 혜암선사가 중수하면서 세운 전각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전통적 양식을 충실히 따른 아담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의 건축물이다.
극락보전 뒤로 팔상전이 보이고 오른쪽이 명부전이다,극락보전 안에는 불단의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 대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상이 있고 그 뒤에 보물 제924호인 유명한 아미타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벚꽃이 흐드러진 범종각의 목어가 유난히 아름답다
약수가 마른 돌웅덩이에 낙화가 곱게 내려 앉았다
따뜻한 남쪽 지리산 밑에는 호랑가시나무가 잘 자라지만, 서울에서는 얼어죽는다
수홍루로 들어가는 맑고 시원한 계류가 폭포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