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 이수정
뜯긴 기억의 눈물 한 움큼
마음의 문을 열면 아련히 들려오는
"얘야 내가 죽으면 이 노래를 불러주렴"
10살 딸애는 그 소리가 그리도 싫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장례식에
딱 너 만한 딸이 그 노랠 부르더라
그 노래듣고 사람들이 함께 울었단다"
아버지는 내 나이 50이 넘게 사셨지만
나는 그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바람도 구름의 넋을 새겨 구겨진 꿈 다려 신고
세상 짐 모두 내려놓고 가시는 길에
꺼억꺼억 가슴을 치며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그 꽃밭엔 오늘도 투정만 부렸던
채송화 피어나나요
봉숭아 피어나나요
꽃 지는 이 시절에도
변함없이 피어나나요
아직도 당신의 딸은 나지막이 노래를 부릅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해거름 따라 우수수 낙엽은 지는데
빛바랜 사진첩 속에 당신은 남아서
황혼에 선 당신의 딸을 바라보는지
침상에 기대어 힘없이 노래하시던
그 모습이 그리워
창가에 비친 희끗한 내 모습에서 당신을 봅니다
<사진 꽃밭에서 2018.6.19.올림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