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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

내 귀는 소라껍질

by 에디* 2018. 11. 21.

내 귀는 소라껍질                    박정남

 

안은 다 외설스럽다

내 귀는 소라껍질

누군가 나를 그의 무릎에 눕혀놓고

내 귓속을 후빌 때

내 귀는 바다소리가 아닌

그냥 외설스럽기 그지없는 좁은 구멍

 

이제 내 삶도 단연 간편 구조

열아홉에 사 들인

어린 애 머리통만한 장식용 소라 껍질을

책장 위 칸에서 내려

내버려도 마땅할 것인데

누군가 이사 가며 아파트 정원에 던져놓고 간

내 것보다 더 큰, 어른 머리통만한

소라껍질을 하나 주워왔다

소라껍질은 뿔이 공격형, 전진의 신호

나 뿔났어, 찔러, 찔러,

보기에 좀 사납지만

살밑은 뽀얀 백색이거나, 살구색으로

미감은 여전히 따뜻하다

안방 세면실 앞

 

배꼽 높이의 수납장 위에 기꺼이 자리 하나를 내주었다

내 귀는 소라 껍질

심심치 않게 물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사진 : 갯쑥부쟁이 2018.10.25.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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