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원에서
지난 7월에도 와 보았으나, 가을에 보는 대릉원의 선은 또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다가 온다
아무리 조경을 하고 가꾸어 본들 공원묘지는 역시 묘지라서 정이 안가고 무서운데...여기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대릉원만은 그렇지가 않다 어머니의 젓무덤처럼 봉긋봉긋 솟아있는 풍경이 포근하기까지 하다
위 사진 중앙의 쌍분은 대릉원에서도 가장 큰 황남대총이고, 경건해야 할 릉원임에도 어쩐지...누어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이니 어쩌랴~! 그러나 그것은 에로틱한 자세가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고향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이다 <2010.11.1.경주>
12만 5천여평의 릉원에는 웬만한 동산 같은 릉이 23기가 있다,
전해 듣기로 릉원이 조성되기 전에는 이 릉 주변에 민가가 많이 있었고 봉분이 사라진 무덤터도 많았었다 한다
23기의 릉 중에 유명한 것이 천마총으로 안 가 보신 분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유일하게 릉의 내부로 들어가서 출토 유물들과 재현 해 놓은 발굴당시의 무덤 안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릉원 봉분의 선을 바라 보면 참 아름답다, 둥글게 그어지는 단순한 선이 좋다
대체 이렇게 큰 봉분의 잔디를 어떻게 깎는지...? 기계로 깎기도 쉽지 않을텐데...
쌍봉 낙타형의 황남대총의 선도 유난히 눈길을 끈다
황남대총(皇南大塚)은 동서로 80m, 남북으로 120m, 높이가 25m나 되는 거대한 능으로 1975년에 발굴조사를 했는데, 북쪽의 능은 여자, 남쪽의 능은 남자의 묘였다.북분에서는 금관을 비롯한 목걸이, 팔찌, 곡옥 등의 장신구가 수천 점이 나왔으며, 남분에서는 무기가 주류를 이루는 2만 49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금동관, 은관이 나온 남분과는 달리 북분에서는 금관과 금제 허리띠 등 각종 금제 장신구들이 나왔고, 금제의 굵은 고리 귀고리가 열 쌍이나 나올 정도로 많은 양의 호화로운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은제 허리띠의 끝 부분에 '부인대' 라고 새긴 글씨가 있어 주인공이 여자임이 판명되었다.
이 고분을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전시 고분으로 삼을 예정이었으나, 천마총에서 더 좋은 유물들이 나오자, 이 고분은 원상으로 복구시키고 천마총을 지금과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무덤의 명칭이 궁굼하다...?일반적으로 왕이나 왕비의 무덤이 분명한 경우 능(陵)이 된다. 무녕왕릉,광릉, 등... 그러나 일반인 무덤의 명칭은 이름을 붙여 묘(墓)를 붙인다. 그런데 외형상으로나 내용상으로 보면 왕릉이거나 왕비 또는 그에 상응하는 사람의 무덤이 분명한데 주인공을 알 수 없는 경우 높고 큰 무덤이란 뜻에서 "총(塚)"이란 말을 쓰고 있다.대릉원의 천마총, 황남대총도 어느날 주인공이 밝혀 지게 되면,릉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대릉원 밖의 계림 앞의 고분들도 규모가 릉급으로 보인다.신라 초기의 왕릉들은 대부분 경주시 도심 안밖에 있으나 통일신라 전후의 왕릉들은 대부분 산기슭이나 왕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이는 그 시기부터 풍수지리설이 발달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본다
나란히 잠들어 있는 이 무덤의 주인공들은 누구이고, 과연 밝혀질 수는 있을까?
이 거대 무덤을 조성한 일천년전의 조상님들은 죽어서도 금은 보화로 치장하고 호사를 누리며, 도굴 안당하고 편안하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