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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

오래된 기도

by 에디* 2014. 11. 23.

 

오래된 기도                                     이문재

 

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사진 기원 2014.11.18. 봉선사에서>

 

 

기도라는 게 격식을 갖추고 간절하게 해야만  기도가 아니란 걸 시인이 깨우쳐 주네요

촛불 한 자루를 켜 놓는 마음 그 자체가 기도이군요,기도란 뭔가를 간구하는 게 아니고, 큰 님의 품에 안겨 하나 되는 마음이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은 평화와 충만으로 가득하고. 나를 위해 더는 바라는 게 없을 때 참된 기도에 들게 되며. 그것이 기도의 본래 의미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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