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임성용
감나무 가지에 감 하나 달려 있다
오래토록 묵은 세월이 잔가지에 쌓여가는 동안
나도 어느새 손 매듭이 굵어졌다
감나무가 저만큼 자라도록
봄이면 꽃을 낳아 가을이면 하늘 흥건하게 기르도록
나는 감나무를 위해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
어깨가 빠지도록 망치질만 했다
짓무른 눈빛이 아주 어두워져
내가 헐벗은 나무의 그림자 아래 흔들릴 때
그제서야 나는 농익은 감을 바라보았다
그때는 항시 일몰의 황혼이거나
달빛 그윽한 밤이었다
딱딱한 밥을 우물거리던 목구멍에서 눈시울까지
한 방울씩 붉게 번지는 노을을 젹셔두고
저혼자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부리 끝에 어둠을 물고 펄럭이는 잎사귀여
내 가뭇없는 기억 속으로 돌아오라
지금,창밖에 찬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고
치부처럼 드러난 몸의 궁색함이
발등 끝에 마른 껍질로 굳어지는 11월
달이 월식을 하듯 그렇게
나도 내 얼굴을 지워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