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반기룡
신사 한 분이 서 계신다
노란 옷을 입고 아무 말없이 빗방울을 맞으며
온몸을 촉촉이 적신 채 흠뻑 명상에 취해 계신다
노랗게 물든 이파리를 바르르 떨며
된서리가 내리면 냉기를 받아 온몸에 주사선처럼 보내고
찬바람이 불면 미련하게 맞서지 않고
조용히 뿌리로 그 기운을 전송한다
은빛 살구나무라 불리기도 하며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부글부글 끓고 님에 대한 애간장을 태워
썩은 내음이 대명천지에 진동한다는 설도 있고 보니
밀알 한 알이 썩어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듯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자신을 망가뜨렸구나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처럼 단단한 지혜를 발견하였구나
(사진 은행나무 2015.11.17. 올림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