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34에 소재한 양동마을은
경주시 동북방으로 20km에 있으며, 마을의 주산인 설창산 문장봉에서 뻗어내린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토담으로 이어지며, 통감속편(국보 283), 무첨당(보물 411), 향단(보물, 412), 관가정(보물 442), 손소영정(보물 1216)을 비롯하여 서백당(중요민속자료 23) 손소선생 분재기(경북유형문화재 14) 등 도지정문화재 7점이 있다.<2015.11.28.경주>
양동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얼룩배기 황소나 수레가 매어 있으면 어울릴텐데,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고 초가집 밖에는 에어컨 외부기가 보이네, 유네스코 등록 전통마을이라고 주민들이 조선식으로 살수야 없을 테지요 ㅎ
전통 민속마을 중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반촌으로 특이하게 손(孫), 이(李) 양성이 서로 협조하며 5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마을이다.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하여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다.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양 가문에서 우재 손중돈선생, 회재 이언적선생을 비롯하여 석학을 많이 배출하였다
어쩐지 포근한 느낌...육십여년 전 우리 어렸을 적에는 이런 마을에서 살았지
기와집에서 살았었냐고? 아뇨, 초가에 살다가 중학생 무렵에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마을의 모든 초가집들은 초가를 벗고 스레트 지붕으로 바뀌었었지
정충비각...이 비각은 손종로(1598~1636)와 그의 노비였던 의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의 명으로 세워졌다
손종로는 남포현감을 지냈으며 병자호란이 나자 노비 의부와 함께 참전하여 경기 이천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옷가지만으로 장사를 지냈다 한다 정충각 오른 쪽의 충노각은 노비 의부를 기리는 것이다
양동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2014년 자료에 의하면 153가구가 산다니 큰 마을이라 하겠다
향단(香壇)...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화려한 지붕구조를 가진 아름다운 건물로 회재(晦齎) 이언적(李彦迪) 선생이 1543년경에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성종임금이 그의 모친의 병환을 돌 볼수 있도록 배려해서 지어 준 집이다.
포근한 풍경...양반들이 사는 기와집은 윗쪽에 하인들이 사는 초가는 아랫쪽에 위치하고 있다
무서리가 내린 11월 말인데 거두어 들이지 않은 무 배추가 파랗고...
마을 앞에는 연밭이 있는데 200종이 넘는 수련과 연꽃이 자란다는 안내문이 있네
ㅎ...까치밥도 몇 알 남겨 두었군
심수정으로 올라가는 길
심수정...희재 이언적의 동생인 이언필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정자로 이언필은 벼슬을 마다하고 노모를 모시었다, 여주 이씨의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지어졌으며 마을 안팎의 10개 정자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고목이 늘어선 심수정 담밖으로 바라보는 마을 풍경
3방향이 탁 터진 정자 마루에 앉으며느 시 한 수가 절로 나올 듯...
관가정(觀稼亭)... 청백리로서 조선 중종(1469-1494)~중종(1506-1544)때 명신 우재(愚齎) 손중돈(孫仲暾, 1463-1529) 선생이 손소공으로부터 분가하여 살던 집이다.
경주는 따뜻한 남쪽 도시...중부지방을 지날 때는 설경을 보며 왔는데,이곳에서는 송엽국 꽃이 피고있다
관가정 내에 자라고 있는 오래된 향나무...나이가 얼마나 되려나?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도 있는데 은행잎이 모두 떨어져 나목이 되어 겨울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