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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

지용생가

by 에디* 2016. 7. 20.

내 고향 옥천은 국민의 애송시 "향수"의 작가  정지용 시인이 태어난 고장이다. 그렇기에 지용 생가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의 대표작인 향수가 주는 감동만큼 설렌다.경부고속도로 옥천I.C를 나와 좌회전해서 국도를따라 보은 방면으로 향하면 지용로가 나오고, 한적한 구읍 삼거리에서 개천 따라 2백m를 더 들어가면 정지용 생가가 나타난다. <2016.3.19.옥천>

 

 

지용생가 주차장 앞의 안내판은 제법 멋드러지다고 할 수 있겠다 ㅎ (뒤편에서 바라 본 모습)

 

초가집 한 채와 헛간 한 채...전형적인 농촌의 초가삼간의 모습,이곳이 정말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시인 지용 생가인지는  마당 한편에 향수 시비와 생가 앞에 서 있는 시인의 동상을 보고서야 알겠다. 게다가 생가 주위로  건물들이 버티고 있어 시인의 향기를 반감시키는 데,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생가 출입문 앞에는 길이 7~8m 쯤 되어 보이는 넓적한 바위가 다리처럼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이 게 설마, 시 "향수"에 나오는 휘돌아 나가는 실개천?작가의 시적 상상이나 표현을 여기서 증거할 필요는 없으리라,

더구나 암흑의 일제강점기 때의 지형지물이 어디 오늘에 그대로 남아 있겠는가?

 

정지용은 1902년 5월 15일 옥천에서 태어나 1950년 9월 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민 애송시 "향수"의 시인이다.

그동안 친근하게 생각했으나 출생연대를 보니  나의 아버님 연배이시다  고향에서 초등 과정을 마치고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중등 과정을 이수하고, 일본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옮겨 문학과 라틴어를 강의하는 한편,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하기도 했다. 산촌 출신으로 보통 이력이 아니다.

 

그러다가, 이화여대 교수직과 경향신문사 주간직은 물론, 기타의 공직에서 물러나 녹번리(현재 은평구 녹번동)의 초당에서 은거하다가 6·25 때 납북된 뒤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그런데 최근 평양에서 발간된 「통일신보」(1993.4.24., 5.1., 5.7.)에서 지인들의 증언을 인용해 정지용이 1950년 9월경 경기도 동두천 부근에서 미군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정지용 시인의 행적에 대한  추측과 오해로 그의 시는 오랫동안   금기시 되다가 1988년도 납·월북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 조치로 작품집의 출판과 문학사적 논의가 가능하게 되어 비로서 빛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거의 중년이 다 되어서야 고향의 큰시인 지용의 시"향수"를 알게 되었다

 

얼기설기 사립문 안으로 초가삼간과 헛간이 보인

 

재현한 것이지만 울안에 큰 우물까지 갖추고 있다, 예전에는 보통 마을 공동우물을 썼지...

 

시단 활동은 김영랑과 박용철을 만나 시문학 동인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화되었고, 첫 시집이 간행되자 문단의 반향은 대단했고, 정지용을 모방하는 신인들이 많아 ‘지용의 에피고넨(아류자)’이 형성되어 그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한다.

이태준과 함께 『문장(文章)』지의 시부문의 고선위원(考選委員)이 되어 많은 신인을 배출하기도 했으며,『문장』지를 통해서 추천한 박두진,조지훈,박목월 등 청록파를 위시하여 이한직,박남수 등이 대표적인 시인들이다.

 

정지용은 우리 근대시사에서 하나의 큰 봉우리라 할 수 있으며, 1920년대 초의 외래 문학사조의 영향을 받아 문예사조의 혼류현상(混流現象)을 이루고 있을 때 등장한 정지용은 우리의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한 것이라 한다.

정지용시집(시문학사, 1935)·백록담(문장사, 1941) 등 두 권의 시집과 문학독본(박문서관, 1948)·산문(동지사, 1949) 등 두 권의 산문집이 있다.

 

지용이 어린시절에 살았을 방...초등과정을 마치고 상경했으니 오래 살지는 않았겠다

 

헛간에는 우리 어린시절에 보았던 농기구들이 있다, 지게,쟁기,멍석,삼태기(?)...

 

내년에 종자로 쓸 우량한 옥수수와 수수...쥐조심!

 

생가의 부엌...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리운 물건들,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들,

 

지용시인을 사랑하는 "지용회"라는 단체에서 생가에 부착해 놓은 동판,...1974년에 진짜 생가는 허물어지고 다시 지었구먼...

 

생가 앞에 시인의 동상과 지용문학관이 있다

고향 옥천에서는 매년 5월경 지용제라는 축제를 열어 시인의 문학적 의미를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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