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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

찔레꽃

by 에디* 2020. 2. 14.

  찔레꽃                                         송 찬 호

그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앴어라 벙어리처럼 하앴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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