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1552 남한산성에서 본 서울야경 서울 야경 남한산성 서문이 서울 야경 촬영의 명소가 되었다는 소문은 이미 들었었다. 그러나 야간에 산을 오른다는 게 내키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는데 마침내 오르게 되었다, 더욱이 남한산성은 걸어서 오를 수도 있지만 차를 타고 성안으로 들어가서 서문으로 가면 차로 거의 90%까지 갈 수 있어서 노약자까지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장마가 시작되는 계절이라 구름이 많았으나 아름다운 일몰 쑈를 보고 나서....잠시 후에 환상적인 서울의 야경을 보았다 야경 촬영 경험 부족과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아쉬움이 많고, 만족 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며칠내로 날씨를 보아 다시한번 가 보고 싶다,삼각대가 튼튼하지 못했고, 나무로 된 전망대에서 촬영했더니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진동에도 초점이 흔들렸음을 후에 알.. 2010. 8. 6. 남한산성에서 황혼을...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황혼 이제 장마가 시작된다는 기상예보대로 산에 오를 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중도에 포기 할 수가 없어서 내친김에 올라가 산성의 서문 전망대에 선 시간은 오후 7시경, 비는 멈추고 찬란한 서울의 황혼쑈가 막 개봉되고 있었다. 구름이 두껍게 덮힌 흐린 날이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 잔치도 황홀했다 어느 노 사진가가 "심봤다~~!!" 라고 외치고 있었다 2010. 8. 6. 수어장대 수어장대(守禦將臺) 인조 2년 남한산성을 쌓을 때 4개의 將臺를 두어 군사를 지휘했는데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바로 수어장대이다, 처음에는 동서남북 4 장대중 西將臺 로 1층이었으나 영조 27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수어장대라는 현판을 걸었다현재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일장산(453m) 정상에 있는데, 병자호란 당시 인조 임금이 친히 군사를 지휘하여 청군과 45일간 항전한 곳이다. 군사 시설임에도 여덟 八자 형으로 올라간 아름다운 팔작지붕을 가지고 있다. 수원 화성의 서장대는 지금도 西將臺인데 왜 이산성의 서장대는 후에 守禦將臺로 개칭되었을까? 지킬 守에 막을 禦 字이다 어찌보면 중복과 강조의 의미가 가득 담긴 造語가 아닌가? 나라를 지키지 못한 한을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고자 하는 뜻이 .. 2010. 8. 6. 아름다운 성벽길 남한산성 최근 신문에서 ...남한산성에 와서 치욕의 역사를 떠 올리지 말라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에 인조 임금이 산성에서 항전하다 끝내 항복을 했으나, 성이 함락 된 적은 없으니, 너무 치욕의 현장이라고 기억하지 말자는 산성을 사랑하는 이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직접 군사를 지휘했던 수어장대가 있고, 행궁이 복원 되었 있고, 혹독한 추위에 숯을 구워 묻었었다는 매탄처가 여기저기 있으니 어찌 호란을 상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혼자서 성벽길을 따라 난 널찍한 길을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북한산성이며 행주산성이며 어느 산성이건 간에... 남한산성 만큼 아름다운 성벽 길을 가진 곳이 있을까요? 울창한 송림과 함께 구비구비 돌아가는 성벽을 따라 난 길이 널찍합니다 W 자로 휘어진 성의 선이 .. 2010. 8. 6. 이전 1 ··· 170 171 172 17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