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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

속리산 법주사

by 에디* 2010. 8. 9.

 속리산 법주사

고향 부근이어서 젊은날에는 여러번 갔었고 문장대까지 올라갔던 속리산 법주사이나...  최근에는 거의 10여년만에 가는 길이었다

시간이 멈추어 선 듯 모든 것이 그대로이나, 미륵대불만은 찬란한 금박옷을 입고 속세를 압도하며 눈부시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오래전 처음 갔을 땐 씨멘트 대불이 서 있었고, 90년대에는 금을 입히지 않은 청동대불이 있었는데, 지금은 황금으로 입힌 대불이 우리를 맞아 주고 있다  그것도 2002년에 입힌 것이라서 지금은 금을 다시 입히는 개금불사를 한다는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10.8.7.>

 

한쪽 날개를 잃은 정이품송이  걱정 되었었는데...많은 분들의 노고로 싱싱한 모습을 보게 되어 참 다행이다  전에 보았을 땐 영양제 주사를 꽃은채 나무 전체를 방충망으로 씌워 놓은 걸 본 기억이 난다

 

속리산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호젓하고 시원하다,

예전에는 매우 넓은 숲길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늙어져서 다시 오니... 이리 길이 좁았었던가? 

 

길을 막고 떡 버티고 선 법주사 일주문...."호서 제일 가람" 이라 할 만 하지...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때 (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했다니, 그 유서 깊음이야 말해 무엇 하랴

법주사 하면 저도 잘은 모르지만, 미륵신앙의 요람이라  하는데...미륵신앙이란 석가모니가 멸한 이후 지상에 태어나 부처가 된 미륵은 용화수(龍華樹)아래에서 3번에 걸쳐 인연이 있는 자에게 설법을 한다는데, 이를 용화삼회(龍華三回)라 한다
인간은 일심으로 미륵을 믿고 덕을 쌓아서 용화3회의 설법의 기회를 얻어 구원받는다는 것이 미륵 신앙이라 한다. 그러한 연유로 이곳에 이런 거대 미륵상이 조성 된 모양이다

 

실은 저 미륵대불을 여러 각도에서 집중 촬영을 했는데, 여기 다 보여 드릴 수는 없고....

천왕문과 팔상전 사이에 우뚝 선 황금색 미륵대불과 짙은 녹색의 뒷산이 얼마나 조화로운가....?

 

국보 55호인 팔상전의 아름다움을 보라...저리 웅장하고 조화로운 5층 목탑은 우리나라에 또 없다

 

팔상전 우측의 범종루에는 범종과  법고,목어,운판이 있는데, 이를 불전4물(佛前四物)이라 하고...

범종은 지옥에서 한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 운판은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짐승들을 위해 모두 이 소리를 들음으로써 영원한 해탈심을 느끼게 한다. 또한 법고는 땅 위에 사는 네 발 달린 짐승들을 위해, 목어는 물 속에 사는 생명들을 위해 울린다.

 

보물915호인 법주사 대웅보전...4년간의 공사 끝에 2005년 10월에 복원된 건물이란다

 

보물 제15호인 사천왕석등...대웅전 바로 앞에 있다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는 8세기 작품으로 신라 전형적인 석등이다

 

국보 제 5호인 쌍사자석등...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높이 치켜들어 상대석을 떠받치는 독특한 양식이다

석등의 구멍으로 대웅보전 현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일직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웅보전  앞에 큰 나무 2그루가 있는데 마침  크레인 차까지 동원하여 열매를  수확하고 있었다

바로 스님들의 염주를 만드는 보리수(염주나무)인데, 저렇게 동그란 열매가 맺혀 있다

 

이 큰 나무가 바로 보리수이다...열매를 털고 인부들이 마대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따가운 한여름 햇살에...관람객들이 천왕문 처마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

 

보물 제 216호인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추래암(墜來岩) 암벽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으로서 이름에서 의상(倚像)이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말한다

 

마애여래의상 옆의 거대바위...수정암 아래에는 맑은 샘이 솟아 나고 있어서 길손은 목을 축이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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