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박남준
툇마루에 앉아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본다 마당 한쪽 햇살이 뒤척이는 곳 저것 내가 무심히 버린 놋숟가락 목이 부러진
화순 산골 홀로 밭을 매다 다음날 기척도 없이 세상을 떠난 어느 할머니, 마루 위엔 고추며 채소 산나물을 팔아 마련한 돈 백만원이 든 통장과 도장이 검정 고무줄에 묶여 매달려 있었다지 마을 사람들이 그 돈으로 관을 마련하고 뒷일을 다 마쳤을 때 그만 넣어왔다 피붙이도 없던 그 놋숟가락 언젠가 이가 부러져 솥 바닥을 긁다가 목이 부러져 내 눈밖에 뒹굴던 것 버려진 것이 흔들리며 옛일을 되돌린다 머지않은 내일을 밀어올린다 가만히 내 저금통장을 떠올린다 저녁이다 문을 닫고 눕는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유독 박남준의 시를 좋아하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가벼운 다툼으로 해서 헤어진후,그를 만난지도 삼 년은 더 되어 가는 듯 하다, 오늘은 박남준 시집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를 넘기다가, 타이틀 시이기도 한 이 시를 골라 보았다,박남준님은 이렇게 산문처럼 붙여서 쓰는 시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