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트마이 사원의 정문...왓트마이는 킬링필드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새로 세운 사원이다 <2006.1.11.>
와트마이 사원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의 명단이라고 한다
왓트마이 사원의 모습
킬링필드 당시 폴포트 정권은 처형하기 전에 사진 촬영을 해서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유골들을 안치한 위령탑
여기서 이 사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나라의 간략한 현대사와 킬링필드의 비극을 이해해야 하겠다, 그리스,로마와 맞먹을 만한 찬란한 문화와 번영을 꽃피웠던 캄보디아의 현대사는 비극적이다.15세기 후반에 아유타야(태국)왕국의 칩입으로 앙코르왕조가 멸망하고,19세기에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2차 대전이후 1954년에 완전독립을 이룬다.
시아누크가 이끄는 불교사회주의 국가로 출발했으나,1970년에 논롤장군이 구테타로 집권하였고, 곧 크메르 루즈군과의 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모택동주의자인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군이 1975년 승리함으로서 "민주 캄프치아"라는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하게 된다.
이로부터 1979년 정권이 무너질때까지 170만명이 살해되는 비극이 전개되며 "킬링필드"라는 끔찍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약 800만명이었다니...얼마나 잔혹하게 반대자들을 처형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며칠전 신문을 보니,폴포트는 이미 죽었으나 당시의 악명높던 "키우 삼판"등 각료, 군인,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전범재판이 열린다고 한다.
폴포트가 정권을 잡았을 때 부패한 논롤 정권에 염증을 느낀 민중들은 그를 환영했다고 한다, 그러나 폴포트는 극단적인 공산주의자로 농민천국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도시민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 시키는가 하면 화페와 사유재산과 종교를 폐지하고, 논롤정권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 노동자 농민 어린이까지도 무참히 학살을 했다
그렇게 잔혹한 크메르루즈도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캄보디아 공산동맹에 의해 전복되었으며, 1980년 뉴욕타임즈 캄보디아 특파원이었던 시드니 쉔버그의 글 "디스프란의 생과사(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이를 소재로 1985년에 "킬링필드"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잔혹한 역사를 기억하고 상기하자는 교훈을 얻고자 함은 좋으나...그렇다고 유골들을 이렇게 보관함이 마땅한지...?
왓트마이 사원의 옆모습
킬링필드의 역사현장에 세워진 왓트마이 사원에는 당시의 일부 유골들을 전시하며,이념이란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 질 수 있는 것인지.....? 후세에 무언의 교훈을 던지고 있다.
한 민족이 이념을 달리해서 분단된 우리에게 더 특별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떠나는 순간, 유난히 귀여워 보이는 한 어린이가 버스를 향해 손 흔들어 주고 있다
저 아이의 미래는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