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1629 청노루와 놀다 봄숲의 귀여운 요정 청노루귀,어떤 봄에는 보지 못하고 지나가기도 하는 귀한 청노루귀를 올해는 실 컷 보았습니다 그 것도 아주 지척인 검단산과 남한산성에 청노루들이 모여 사는 줄을 몰랐다니... 모르는 것 투성이...무엇을 안다는 말을 이제는 아주 버려야 하겠습니다. 아직은 꽃샘추위로 활짝 꽃잎을 열어서 보여 주지는 않는군요 2013. 3. 25. 望月寺 남한산성 내에 있던 10개의 사찰중에 가장 역사가 깊은 절로 望月庵에서 유래 되었다 ,이 사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한양에 있었던 장의사를 허물고 그곳에 있던 불상과 금자화엄경,금솥(金鼎)을 옮겨 창건하였다,옛 망월사는 일제에 의하여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후에 복원 된 것으로,지금의 법당자리가 망월사 중심전각이 있던 곳이다,곳곳에 남아있는 돌 축대는 옛 망월사의 규모와 건물배치를 짐작케 하며 대형맷돌이 유물로 보존되어 있다.대웅보전 옆에 있는 사리탑은 인도의 인디라 간디 수상으로부터 직접 모셔온 진신사리를 봉안한 13층 석탑이다 망월사 대웅보전과 극락보전 전에 없던 일주문...새로 세운 듯... 진신사리를 봉안한 13층 석탑 전에는 저 빈터에 전용소방차가 늘 주차되어.. 2013. 1. 23. 수어장대 가는 길 대낮인데도 별안간 천지가 밤처럼 어두워지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런 비바람과 함께 번개가 치고, 뇌성(雷聲)이 진동하니 천지는 마치 무슨 개벽이라도 하는 듯하였다. 한양(漢陽) 도성(都城)을 중심으로 경기 일부가 그런 무서운 폭풍우 속에 휘말렸다. 인조(仁祖) 십사 년, 병자년(丙子年)이었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 구름이 걷히자 홀연히 백색의 무지개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모두 절로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흰 무지개라니 참 별 희한한 일도 다 보겠네. 틀림없이 나라에 큰 변이 일어날 징조 아닌가!" 당시 조선은 인조 반정에 성공한 서인 세력이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을 쓰고 있었다. 이것은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後金)을 자극하고 긴장시키.. 2013. 1. 19. 서문과 송림 서문(西門)...남한산성에도 4대문이 있는데, 지하철 5호선 종점인 마천역에서 걸어 놀라가면 서문에 이르게 된다, 4대문은 모두 고유 이름이 있다,한양 도성의 남대문의 이름이 숭례문이듯이... 성남 쪽의 남문은 지화문(至和門)이고 광주쪽의 동문은 좌익문(左翼門),하남쪽의 북문은 전승문(全勝門)이며 서울 쪽의 서문은 우익문(右翼門)이다 4대문은 모두 설계가 표준화 된 듯 모두 규모나 모양이 비슷하다이 문을 나서면 서울의 송파가 눈 앞에 펼처진다, 인조 임금님도 이 문을 나서 삼전도로 갔다, 송파 마천동에서 오르면 이곳에 다다르는데, 저 성문을 들어서면 바로 국청사 절이 있다 산성에는 울창한 송림이 유명하다,송림 숲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아름답지 않은가? 2013. 1. 18. 남한행궁 눈이 내린지 한 참이 지났지만, 남한산성 행궁의 기와 지붕 위에는 아직도 눈이 하얗게 덮혀 있다, 추위가 계속 되기도 했고 산 속이라서 눈이 녹지 않는 모양인데 보는 이에게는 더 할 수 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행궁이란...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국가사적 제480호인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 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 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1626년에 건립되었다 일제 침략기 때 의병의 근거지였다고 철저히 파괴되어 1930년 경에는 완전히 주춧돌만 굴러다니는 폐허가 되었다,최근 10년간 복원 공사를 하여 마침내 2012년에 완공한 사적지이다 실제로 인조 2년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2013. 1. 16. 국청사(國淸寺) 남한산성 국청사는... 조선 인조 3년(1625) 각성대사에 의하여 창건 되었다 각성대사는 인조임금으로부터 팔도총섭총절제중군주장(八道總攝總節制中軍主將)을 임명 받은후 전국 팔도의 僧軍을 모아 남한산에 성을 축성하고 9개의 사찰을 창건하였다,병자호란의 수모를 또다시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승군을 훈련하고 군기,화약,군량미를 비축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국청사이다 후에 일제 침략기 때,일본군에 의해 방화소진 되었던 것을 1968년에 중건되었고,1986년 불자 원만행이 대웅전과 요사채 부지 1,003평을 기증하였으며,이 모든 것을 후세에 전하고 국태민안,광도중생을 기원하기 위하여 현주지 신걸스님께서 삼성각과 요사채를 신축하고 1998년에 대웅전을 중건중수하였다 국청사 삼존불은 신라 헌안왕 3년(859) 강원.. 2013. 1. 14. 연주봉 옹성 눈이 내린지 한 참이 지났지만,연이은 추위로 산성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다 하얗게 눈 덮힌 남한산성의 연주봉 옹성이 기우는 저녁 햇살을 받으며 눈 부시게 빛나고 있다 남한산성에는 5 개소의 옹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하남시 방향으로 뻣어 나와 있는 연주봉 옹성이 제일 멋지다, 옹성이란 본성을 방어하기 위해 본성벽에 이어져 쌓은 전진 방어진지 혹은 관측소 열할을 하는 곳으로 본성과는 작은 암문을 통하여 교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수원 화성의 장안문,팔달문,화서문 등에 대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덧대어 쌓은 성도 옹성이다 2013. 1. 14. 만추의 산성 늦가을 산성에 오르니, 어느새 기다리다 지친 붉은 단풍은 발아래 수북하고 얼마 남지 않은 잎들이 이제라도 와줘서 고맙다고 반긴다 수어장대로 가기직전 이 단풍나무 아래에서 바라 보는 에스라인의 성벽길이 아름다워서 해 마다 오는 자리인데, 단풍철을 딱 맞추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용의 꼬리가 길고도 길지...자그마치 8km가 넘거든... 10월의 마지막 휴일이라서 산성길은 시장 안처럼 사람들로 붐빈다 같은 장소, 조금 다른 시각...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은 단풍 낙엽으로 덮혀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발자국 소리가... 병사들을 훈련하던 연무관 주변에도 오래된 느티나무 여러그루가 있다 느티나무 단풍 사이로 행궁의 정문인 한남루 지붕이 보인다 죽은나무의 품에 씨앗이 싹튼 어린 나무..."나도 단풍나무.. 2012. 11. 8. 남한산성 행궁 우리나라의 10월은 어딜가나 정말 아름답다 가까운 남한산성 행궁을 돌아보니...느티나무 단풍이 이리 아름다울 줄 예전에는 몰랐다 행궁이란...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국가사적 제480호인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 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 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1626년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2년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싸웠으며, 이후에도 숙종,영조, 정조, 철종, 고종이 여주 이천 등지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기도 했다 남한산성 행궁은 우리나라 행궁중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유사시 임시수도의 역할을 수행했던 곳.. 2012. 11. 6. 이전 1 ··· 171 172 173 174 175 176 177 ··· 18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