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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

by 에디* 2020. 11. 4.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               임태주

 

가을해가 풀썩 떨어집니다

꽃살 무늬 방문이 해 그림자에 갇힙니다

몇 줄 편지를 쓰다 지우고 여자는

돌아앉아 다시 뜨개질을 합니다

담장 기와 위에 핀 바위솔 꽃이

설핏설핏 여자의 눈을 밟고 지나갑니다

뒤란의 머위 잎 몇 장을 오래 앉아 뜯습니다

희미한 초생달이 돋습니다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는 손톱 끝에서

시(詩)는 사랑하는 일보다 더 외로운 일이라는데 ……

억새를 흔들고 바람이 지나갑니다

여자는 잔별들 사이로 등(燈)을 꽂습니다

가지런히 빗질을 하고

一生의 거울 속에서 여자는

그림자로 남아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를 씁니다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를 지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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