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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367

할미꽃 할미꽃 이해인 손자손녀 너무 많이 사랑하다 허리가 많이 굽은 우리 할머니 할머니 무덤가에 봄마다 한 송이 할미꽃 피어 온종일 연도(煉禱)를 바치고 있네 하늘 한번 보지 않고 자주빛 옷고름으로 눈물 닦으며 지울 수 없는 슬픔을 땅 깊이 묻으며 생전의 우리 할머니처럼 오래오래 혼자서 기도하고 싶어 혼자서 피었다 혼자서 사라지네 너무 많이 사랑해서 너무 많이 외로운 한숨같은 할미꽃 2013. 7. 18.
산숲을 내려가며 산숲을 내려가며 박남준 아득하던 사랑 더는 막막한 길 없을 때 산에 들었습니다 언제인가 간 적이 있고 문득 마음은 먼 산그림자 저물도록 바라보던 그곳에 갔습니다 몇번의 겨울숲에 눈 나리고 지다 남은 나무의 숲에 그리움을 걸듯 봄날이라는 이름의 그대 기다리는 동안 눈가에 잔주름도 하나 둘 매달려갔습니다 산 밖에서는 그리움이 되고 귀향의 안식이 되던 것들이 주린 배의 양식이 되고 살아남기 위한,땀 흘려야 할 일터가 되고 한숨이 되고,무섭도록 외로운 짐승의 밤이 되어 옥죄이기도 했습니다 나무고 풀이고 새이고 물이고,내 손길 닿지 않은 것 없습니다 나무며 풀이며 새이며 물이며,그들로 인해 마음 상하던 날들 많았습니다 한때는 그만 그림자 걷어 끌며 멀리 떠나갈까 한때는 아예 산길을 내려 세상으로 난 긴 기다림의 .. 2013. 7. 16.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김용택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나 홀로 걷는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지기 전에 그대가 와서 반짝이는 이슬을 텁니다 나는 캄캄하게 젖고 내 옷깃은 자꾸 젖어 그대를 돌아봅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마르기 전에도 숲에는 새들이 날고 바람이 일어 그대를 향해 감추어 두었던 길 하나를 그대에게 들킵니다 그대에게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내 마음 가장자리에서 이슬이 반짝 떨어집니다 산다는 것이나 사랑한다는 일이나 그러한 것들이 때로는 낯설다며 돌아다보면 이슬처럼 반짝 떨어지는 내 슬픈 물음이 그대 환한 손등에 젖습니다 사랑합니다 숲은 끝이 없고 인생도 사랑도 그러합니다 그 숲 그 숲에 당신이 문득 나를 깨우는 이슬로 왔습니다 2013. 7. 12.
바람에 실어....꽂지 바람에 실어 박남준 어찌 지내시는가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하늘의 해,지는 노을 저편으로 수줍게 얼굴 내어미는 아미 고운 달,그곳에도 무사한지,올 장마가 길어 지루할 거라느니 유별나게 무더울 거라느니,그런가보다,그런가보다,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었지 초복인가 했더니 어느덧 말복이 찾아들고 입추라니,가을의 문턱에 들었다니 아,그런가보다,그런가보다,이곳 모악의 밤도 이제 서늘한 입김 피워올리니 따뜻한 불기가 간절하구려, 보고 싶구려 내 날마다의 밤 그리움으로 지핀 등 따뜻한 온돌의 기운 바람에 실어 보내노니 어디 한번 받아보시려나 서리서리 펼쳐보며 이 몸 생각,한 점 해주실련가, p> 2013. 7. 10.
연밭의 잠자리 잠자리 2 김주완 잠자리의 잠자리는 산지사방에 널려 있다 돌 위에 앉아서도 자고 풀잎에 거꾸로 매달려서도 잔다 바람을 타고 구름처럼 가볍게 흐를 때는 바람 위에서도 조는 듯이 잠을 잔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가벼운 몸, 하르르한 날갯짓을 멈추는 곳이 바로 잠자리가 된다 앉거나 날거나 집 없이도 잠을 자는 잠자리의 잠자리 2013. 7. 1.
연꽃 속의 부처님 연꽃 속의 부처님 박희진 연꽃 속의 부처님 살 속의 핏 속의 뼛 속의 바람 속의 연꽃 속 이슬 속의 미소하는 부처님 내장 속을 흐르는 강물에 부침하는 중생의 발톱 속 무수한 티끌 속에 저마다 삼천대천세계가 들어있다. 연꽃이 피어 있다. 또 그 무수한 연꽃 속 이슬 속엔 저마다 미소하는 부처님이 들어 있어 무량광명을 뿜고 있다 2013. 7. 1.
얼굴 얼굴 이윤학 제 얼굴에 침 뱉어논 뱀딸기를 보았다. 대낮부터 붉은 얼굴. 홍시 같은 얼굴을 한 뱀딸기를 보았다. 한평생을 부끄럽게 살다 가는 얼굴. 한평생을 부끄럼을 타다 가는 얼굴. 뱀딸기를 딴 적이 있었다. 뱀딸기의 둥근 속은 천장으로 달라붙어 텅 비어 있었다. 붉게 익어터진 지붕과 희고 부드러운 천장을 가진 뱀딸기의 영혼이 살던 방을 보았다. 더러워 부끄러워 안엣것들을 내다버린 뱀딸기 열매에서는 붉게 익어 터진 부분에서도 하얀 즙이 나왔다. 까슬까슬 뱀딸기 열매에서는 무수한 舍利(사리)가 나왔다. 요즘 들에 나가보면 흔하고 흔해서 천대받는 뱀딸기를 보고 시인은 이런 글을 쓰는군요,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뱀딸기를 먹으면 안된다고 했지만, 그 붉은 유혹에 넘어가 따 먹어 본적이 있습니다, 맛이 별로여서.. 2013. 6. 24.
하얀붓꽃 하얀 붓꽃 시/초동 파란 잎이 길게 펼쳐 놓고 긴 목 뻗어서 기다림이 긴 시간이 흘렀다. 가신님은 왜 오신다는 기별이 자꾸 늦어지나? 긴 여름의 장마에 채어 놓은 물이 다 썩어서 풍기는 냄새만이 도랑을 다 메우고서 풍겼네. 그대 향기는 어디로 갔나? 천둥치고 먹구름이 여름 내내 다 지나가서 네 하얀 꽃잎이 미소로 긴 목만 하얗게 흔들려 그냥 서글퍼 보인다. 파란 네 잎들에게 바람만 비비면서 스산하게 차가운 기운을 보낸다. 넓은 네 꽃이 낮잠 늘어진다. 고운 햇살의 하얀 붓꽃 2013. 6. 12.
양귀비 환생하다 개양귀비 들판에서 플랜더즈 들판에 양귀비꽃 피었네, 줄줄이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그 십자가는 우리가 누운 곳 알려주기 위함. 그리고 하늘에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아오르건만 저 밑에 요란한 총소리 있어 그 노래 잘 들리지는 않네. 우리는 이제 운명을 달리한 자들. 며칠 전만 해도 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석양을 바라보았네. 사랑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였건만 지금 우리는 플랜더즈 들판에 이렇게 누워 있다네. 원수들과 우리들의 싸움 포기하려는데 힘이 빠져가는 내 손으로 그대 향해 던지는 이 횃불 그대 붙잡고 높이 들게나. 우리와의 신의를 그대 저 버린다면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 비록 플랜더즈 들판에 양귀비꽃 자란다 하여도. 위 시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쓰인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 중 하나로, 당.. 2013.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