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詩 한 편367 창밖에는 가을... 상수리나무 그 잎새 박남준 들어보아 나 그때 그 늙은 상수리나무의 노래를 들었지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잎새 흔들어 누구인가 끊임없이 부르고 있다는 걸 그 노래는 마치 언제인가 그의 곁을 떠나가던 소년의 발자국 소리 언 눈길을 밟고 오던 수우수우 사각사각 아름다운 것은 때로 슬픔이 되어서 그 많던 잎새들 어느덧 보이지 않네 늙은 상수리나무는 그에게 남은 마지막 일이라는 듯 지나간 유년의 산너머로 굽은 가지를 들어 마른 잎새 이제 한 잎 옛길의 적막속에 풀어 보낸다 그때 몸 안에서 일어나는 아지랑이 아지랑이 전율처럼 수만 송이 피어나는 햇살의 새순들 순간 숲의 저편이었던 세상이 초록에 감겨 눈부시다 2013. 11. 7. 가을 산성리...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류시화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2013. 11. 2. 산국화 산국화 김남주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풀잎이 지고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붉은 입술로 꽃이라 했지요 꺾일 듯 꺾이지 않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가면 들국화 노오란 꽃이라 했지요 2013. 10. 27. 멀리 있는 것이 마음에 자리잡으면 멀리 있는 것이 마음에 자리잡으면 박남준 아니다,나는 그렇지 않아 멀리 있는 것이 마음에 자리잡으면,이윽고 깊어지면,무너져갈 뿐 아름다운 빛은 되어가지 않는다, 봄날의 꽃들 피어나고 작은 새들 저마다의 보금자리를 위하여 둥지를 틀어갈 때 눈 들어 보면,세상의 모든 것들 어쩌자고 마음에 닿지 않은 것 없어,하염없다.눈물난다.눈물난다. 2013. 10. 14. 맨드라미 맨드라미 김주완 치켜세운 목을 조악거리며 수탉 한 마리 마당 가운데로 나서고 있다 붉은 볏을 세워 가볍게 흔들며 푸른 물이 나도록 허공을 톱니로 썰고 있다 오종종한 병아리들과 둔부가 통통한 암탉 두어 마리, 부챗살처럼 벌어져서 뒤따르고 있다 관은 높은 곳에서 권위를 거머쥐고 널리 떨치는 것, 수탉이 목을 젖히고 한껏 큰 소리로 길게 울었다 아래채의 초가지붕 마른 볏짚이 가볍게 흔들렸다 볕살 끓는 우물가 맨드라미 한 그루 실하게 서서 검붉은 계관 일렁이고 있다 한가득 머금은 자잘한 씨앗 까맣게 공중으로 금세 흩뿌릴 것 같다 푸른 대숲이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맨드라미 쪽으로 몸을 돌린다 지렁이처럼 대숲을 빠져나온 바람 한 줄기, 맨드라미 꽃술 부근을 서성인다 살갗 따가운 팔월 땡볕 아래 사랑이 익는다 씨 맺.. 2013. 10. 3. 사르비아의 노래 사르비아의 노래 시/이해인 저 푸른 가을 하늘 물 같은 서늘함으로 내 사랑의 열도(熱度) 높음을 식히고 싶다 아무리 아름다운 상처라지만 끝내는 감당 못할 사랑의 출혈(出血) 이제는 조금씩 멈추게 하고 싶다 바람아 너는 알겠니? 네 하얀 붕대를 풀어 피투성이의 나를 싸매 다오 불 같은 뜨거움으로 한여름을 태우던 나의 꽃심장이 너무도 아프단다, 바람아 2013. 10. 1. 담쟁이 담쟁이 강영은 바위나 벽을 만나면 아무도 모르게 금이 간 상처에 손 넣고 싶다 단단한 몸에 기대어 허물어진 생의 틈바구니에 질긴 뿌리 내리고 싶다 지상의 무릎위에 기생하는 모오든 슬픔이여 벼랑 끝까지 기어오르는 기막힌 한 줄의 문장으로 나는 나를 넘고 싶다 2013. 9. 30. 사랑의 길 사랑의 길 피천득 먼 길을 가야만 한다 말하자면 어젯밤에도 은하수를 건너온 것이다 갈 길은 늘 아득하다 몸에 병똥별을 맞으며 우주를 건너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언젠가 사라질 때까지 그게 사랑이다 2013. 9. 28. 물봉선 피는 계곡으로 가요 물봉선화 시. 향원 모든 것 다 버리고 깊고 깊은 절간 뒤꼍 보살이 된지 오래네요 속없는 언챙이라 숨어 산다 비웃어도 좋고 요정의 고깔모자 훔쳤다 모함해도 좋아요 평생 그늘에 가려 고개 들지 못한 제 모습 들여다 보시고도 그런 말 나올까요 딱 한 발짝만 다가와 가만가만 들여다 보세요 당신의 어릴 적 모습 거기 노랗게 소리 내 웃고 있지 않나요 우리 서로 아문 상처 건들지 말자고요 살면서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나 말 못 할 사연은 있는 법 기쁘게 해주는 일 아니거든 더 이상 묻지 마세요 가끔 벌이 찾아와 충고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네요. 2013. 9. 10.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4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