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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367

한 송이의 꽃도 한 송이의 꽃도 박남준 한 포기의 풀을 볼 때 생각했습니다 한 포기의 풀이 꽃을 피울 때 가슴 쓸어내렸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저처럼 꽃피워 지는 것이라면 꽃으로 말입니다 사랑으로 가득 차 피어나는 꽃 꽃꽃꽃꽃꽃 기다림 끝에 피어납니다 그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가슴 저미는 그리움 그리움 가득 없이는 한 송이의 꽃 피울 수 없습니다 열매 맺지 못합니다 2013. 6. 5.
붓꽃 붓꽃 권애숙 어느 왕정시대 직간하는 선비의 못다 쓴 상소문을 위해 지금 여기 필봉을 휘두르고 있구나 반만년 호곡으로 갈아낸 먹보라 핏물 꾹꾹 찍어 창공을 적시는 분노 때도 없이 부는 황사바람 그대 붓끝을 분질러도 새는 날이면 또 다시 핏물을 쏟는 기개여 부끄럽구나 그대 앞에 서면 한 자루 붓도 가지지 못한 건달 돌아보면 하늘은 빈 두루마리 펼치고 있다 작년 오월에도 붓꽃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이 시를 적어 놓았었다. 시절은 속절없이 변해가는 데도, 성내천의 붓꽃은 변함없이 찬란하게 피었다. 왕조시대 조선 선비는 목숨을 내어 놓고 직간하는 상소문을 써서 임금께 올렸다는 이야기를 안다 그 선비의 먹물 뚝뚝 떨어지는 날카로운 붓의 형상을 닮았다는 붓꽃은 이 시대의 나약하고 권력만 쫒는 지식인들을 나무라고나 있.. 2013. 5. 27.
금낭화 금낭화 송은애 불길한 어젯밤의 꿈 연등 내 걸어 잠재우고 사뿐 사뿐 걸어오는 그대 작은 숨결 꽃 초롱으로 반긴다 길게 내민 저 손끝에 매달린 사랑하나 풍경소리와 밀착되어 가슴 열던 날 내일이면 그 사랑 찾아오려나 남한산성의 송림 아래 철쭉을 보러 산에 갔는데, 올림픽 공원엔 꽃이 다 졌건만 여기도 산이라고.... 철쭉은 거의 피지 않고 약 1주일 쯤 더 기다려야 될 것 같다 대신에 작년에 보았던 국청사 장독대의 금낭화를 보러 갔다 예상대로,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금낭화는 항아리 사이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배시시 웃어준다 2013. 5. 17.
애기똥풀 애기똥풀 안도현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2013. 5. 16.
길 끝에 닿는 사람 길 끝에 닿는 사람 박남준 다시 나는 먼길을 떠난다 길은 길로 이어져서 산과 들 강, 저문 날이면 어느곳엔들 닿지 않으랴, 젊은 꿈과 젊은 밤과 오랜 그리움이 혹여 있을지,그곳엔들 문을 열면 밤은 더욱 자욱하고 신음소리 쓸쓸하지 않으랴만 더러는 따뜻했어,눈발이 그치지 않듯이 내가 잊혀졌듯이, 이미 흘러온 사람, 지난 것들은 여기까지 밀려왔는지,되돌아보면 절뚝거리던 발걸음만이 눈 속에 묻혀 흔적없고 문득,나 어디에 있는가,어쩌자고,속절없이 누군들 길 떠나지 않으랴,먼 길을 떠난다 흐르는 것은 흐르는 것으로 이어져서 저 바람의 허공,갈 곳 없이 떠도는 것들도 언제인가,닿으리라 비로소,길 끝에 이르러 거친 숨 다하리라,아득해지리라 2013. 5. 3.
지친 어깨 위에 작은 별 지친 어깨 위에 작은 별 박남준 밤 깊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섶에는 저 높은 하늘의 작은 별들 동무 삼아주려는지, 지상으로 내려왔는지, 연록빛, 참 곱기도 고운 빛 뿌리며 밤길 훤히 밝혀줍니다, 반딧불 말이어요, 여기는 가시덤불이고요, 여기는 허방이에요, 낮은 어깨 위로 날아오르며 힘내요,힘내요, 혼자가 아니에요, 지난 겨울 별똥별들 무척이나 떨어져내렸었는데..... 저녁 6시에 남들은 지하철 타고 집으로 가는 시간 나는 지하철 서울대공원역에서 내렸습니다, 흐드러진 벚꽃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금방 어둑어둑해졌지요 이맘 때면 늘 오던 길이라 익숙한 길, 호수가를 돌아 동물원 앞을 지나고... 국립 현대미술관 야외조각 공원도 물론 안 갈 수는 없죠 저무는 공원의 미술관 아래는 88올림픽 때 만들어진 서울랜.. 2013. 4. 26.
사월에 걸려 온 전화 사월에 걸려 온 전화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 2013. 4. 23.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진달래 보러 오금공원 동산에 올라갔다가 누가 심어 놓았는지...? 서양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기에 몸을 낮추어 바라 봅니다, 메마른 땅에 심겨진 작은 풀꽃들은 겨우겨우 빈약한 꽃대를 밀어 올리고 꽃을 피웠습니다 주홍의 연지를 바른 듯... 목이 길어 더욱 가녀린 꽃, 2013. 4. 18.
세상 끝의 봄 세상 끝의 봄 김병호 수도원 뒤뜰에서 견습 수녀가 비질을 한다 목련나무 한 그루 툭,툭, 시시한 농담을 던진다 꽃잎은 금세 멍이 들고 수녀는 떨어진 얼굴을 지운다 샛길 하나 없이 봄이 진다 이편에서 살아보기도 전에 늙어버린, 꽃이 다 그늘인 시절 밤새 혼자 싼 보따리처럼 깡마른 가지에 목련이 얹혀 있다 여직 기다리는 게 있냐고 물어보는 햇살 담장 밖의 희미한 기척들이 물큰물큰 돋는,세상 끝의 오후 봄 풍경으로 "세상의 모든 가을"을 보여 주는 듯, 정갈하고 고적한 시다, 밤새 혼자 싼 보따리처럼... 어쩌면 이렇게 표현했을까? 견습 수녀이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의 마음 한 자리를 엿보게 하는 한 편,깡마른 나뭇가지에 해쓱하게 얹힌 목련꽃이 선연히 떠 오른다, "꽃이 다 그늘인 시절" 젊음이 다 그늘인 어떤.. 2013.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