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詩 한 편367 은행나무 아래에서 은행나무 아래서 김춘경 시인 길을 가다 은행나무 아래 멈춰 섰다 떨어진 노란 잎 하나 주워 들자 손끝에 찌릿하게 전해오는 전기 가을이 지는 신호다 어디로 가야하나 떨어진 낙엽들 속에 서성이는 허기진 그리움의 주소는 여전히 미확인 상태 가야한다 손끝의 온기 식기 전에 애정이 목마른 그대 찾아 가을이 지는 소리 전해야 한다 찬바람 불어 손끝이 시려 와도 놓지 못하는 나뭇잎 하나 쓸쓸함이 우르르 떨어지는데 아, 어디로 가야하나 2019. 11. 7. 가을편지 가을 편지 이해인 / 수녀, 시인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2019. 9. 22. 청춘별곡 청춘별곡 최대남 잘가라 청춘 부디 잘가거라 아름다웠던 청춘아 너 있었기에 부서지며 깨어져도 아프지만은 않았다. 한때 너는 내 가슴속 뜨겁게 넘실대는 활화산 권태를 모르는 사랑이었다 잘가라 청춘 이토록 육체 빛나게 해놓고 어느새 갔느냐 가슴 미어지는 청춘아 너 있었기에 외롭던 고통도 달콤한 사치였으니 시작이 줄어들고 기다림도 줄고 하여 상처없이 살아갈 내일이 슬프기만 하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아픈이별 할 수 있을까 잘가라 청춘 부디 잘가라 아름답게 빛나던 내 청춘아 내 사랑아 2019. 9. 14. 가을의 기도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2019. 9. 11. 봐요 봐요 김수현 아무도 당신을 바라봐 주지 않는다고 가던 길을 멈추지 말아요 봐요, 관심 가지는 이 하나 없어도 저 민들레가 노란 꽃을 피워 바닥에 희망의 씨를 뿌리듯이 머지않아 당신이 가는 길 위에 꽃향기 가득 채워질 거에요 2019. 8. 29. 해당화 해당화 송수권 물 위에서 새가 걸어나왔다 처음엔 물오리인 줄 알았다 물오리란 이름이 없을 때 별들이 총총 빛나는 밤에 아직 별이란 이름도 없을 때 하늘에선 이상한 바람소리가 났다 그 새는 마야의 신보다 더 오래되었고 바닷가에선 한 소년이 기다리고 서 있었다. 허리엔 어머니가 준 화살통을 차고 있었고 화살통엔 세개의 화살이 들어 있었다 그는 세 번째의 화살을 날려 보냈다 새의 심장을 향해 새는 모래밭까지 걸어나와 뜨거운 피를 쏟았다 소년이 수장한 새의 무덤 심장보다 붉은 꽃이 피어났다. 2019. 7. 25. 갯메꽃 갯메꽃 김종태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너는 따뜻한 남쪽하늘 아래에 산다 한줌의 가녀린 몸을 옹크리고 가쁜 숨 죽이고 산다 겉으로만 싱거운 너는 쫍쪼름하니 바닷바람 부는 곳 모래알을 움켜쥐거나 바위틈에 산다 비바람 땡뼡 마다 않고 외딴 곳에 산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고 누구도 돌보지 않을 때면 너는 저 혼자 신이 나서 바위틈을 누비며 온통 시퍼런 꿈을 펼친다 어디에 사는지 언제 올지 모르는 그리운 그 사람 생각이 날 때마다 연분홍 고운 그리움을 살며시 드러낸다 누구에게 들킬세라 하루만 품어보는 그리움이다 또 그렇게 석달을 그리워할 뿐이다 사진 갯메꽃 2019.5.19.선재도 2019. 7. 24. 감자꽃 감자꽃 박노해 감자꽃 피는 6월 무성한 감자밭 가에 앉아 깜박 졸았다 6월 한낮의 어지러운 꿈 감자꽃이 피면 감자알이 굵어진다 하얀 꽃 피면 하얀 감자로 자주 꽃 피면 자주 감자로 꽃과 뿌리가 일체인 정직한 순종의 꽃 햇살 뜨거우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알이 굵어지고 무성한 감자밭 가에 앉아 나는 6월의 순박한 꿈과 정직한 뿌리를 그리워한다 유월 말에 달리는 강원도 길... 강원도 감자바우 라더니 정말 감자밭이 많구나 실하게 자란 감자밭은 감자꽃으로 새하얗다 부지런한 농군은 감자꽃은 다 따 줄텐데...품값이 비싼 시대에 그럴 일손이 어디 있으랴 내가 알기로, 감자꽃을 따 주면 꽃과 열매로 소모될 영양분이 감자 알을 굵게 한다고 했다 미쳐 따 주지 못한 감자꽃들이 지나는 나그네를 즐겁게 한다 2019. 7. 5. 오월이 지나는 길목 오월이 지나는 길목 하영순 가다가 돌아선 사람처럼 뭔가를 찾는다 허전한 가슴 꽃은 피고 지는데 잡지 못한 바람 초록이 짙어 무성한 오월 산에 피는 꽃은 산이 좋아 산에 피고 들에는 들꽃이 핀다 붉어서 눈부신 모란 호수에 돌멩이 던진 자리 꽃이라 하던가 모란은 떨어져 자취도 없고 앵두가 나뭇잎에 숨어 피었다 앵두! 선홍빛 영롱한 작아도 과일 한적한 뒤뜰 정원에 혼자 피었다 오월이 지나는 길목 봄날은 간다 2019.4.26.세정사계곡에서 2019. 5. 21. 이전 1 ··· 3 4 5 6 7 8 9 ··· 4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