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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367

사랑 사랑 한용운 봄 물보다 깊으니라 가을 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 말하리 2019. 5. 9.
먼길 먼 길... 목필균 내가 갈 길 이리 멀 줄 몰랐네 길마다 매복된 아픔이 있어 옹이진 상처로도 가야할 길 가는 길이 어떨지는 물을 수도 없고, 답하지도 않는 녹록지 않는 세상살이 누구나 아득히 먼 길 가네 낯설게 만나는 풍경들 큰 길 벗어나 오솔길도 걷고 물길이 있어 다리 건너고 먼 길 가네 누구라도 먼 길 가네 때로는 낯설게 만나서 때로는 잡았던 손 놓고 눈물 흘리네 그리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미소 짓기도 하며 그렇게 간다네 누구라도 먼 길 가네 돌아설 수 없는 길 가네 2019. 4. 15.
인생은 구름이며 바람인 것을 인생은 구름이며 바람인 것을 이해인 그 누가, 날더러 청춘이 바람이냐고 묻거든 나, 그렇다고 말 하리니 그 누가, 날더러 인생도 구름이냐고 묻거든 나, 또한 그렇노라고 답하리라 왜냐고 묻거든, 나, 또 말하리라 청춘도 한번 왔다 가고, 아니 오며 인생 또한 한번가면, 되돌아 올 수 없으니 이 ! 어찌, 바람이라 ! 구름이라 ! 말하지 않으리요. 오늘, 내몸에 안긴 겨울 바람도, 내일 이면, 또 다른 바람이 되어 오늘의 나를 외면하며, 스쳐 가리니 지금, 나의 머리 위에 무심이 떠가는 저 구름도, 내일이면, 또 다른 구름이 되어서, 무량한 세상 두둥실 떠가는 것을 잘난 청춘, 못난 청춘, 스쳐 가는 바람 앞에 머물지 못하며, 못난 인생, 저 잘난 인생, 흘러가는 저 구름과 같을 진데, 어느 날, 세상 스쳐.. 2019. 3. 30.
서시 서시 나희덕 단 한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2019. 2. 17.
옥천의 밤 옥천의 밤 이은방 앞 여울 뒷산머리 천년 달빛 머리감고 아기사슴 눈망울에 어려드는 하얀 꿈길 그립다 어미 맘 하나 가슴 찧는 물레방아 빈 성루 외롬을 핥는 풀꽃 하나 나부끼고 영롱한 이슬밭에 한 우주를 지핀 묵시 시방도 별무리가 돋는 고요로운 삼경 하늘 2018. 12. 29.
11월 11월 나태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나태주 사랑 시집 에서 2018. 12. 21.
옛 이야기 옛이야기 김소월 시 고요하고 어두은 밤이 오면은 어스레한 燈(등)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바리고 가신 뒤에는 前(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워 두었던 옛이야기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렸습니다. 2018. 12. 13.
내 귀는 소라껍질 내 귀는 소라껍질 박정남 안은 다 외설스럽다 내 귀는 소라껍질 누군가 나를 그의 무릎에 눕혀놓고 내 귓속을 후빌 때 내 귀는 바다소리가 아닌 그냥 외설스럽기 그지없는 좁은 구멍 이제 내 삶도 단연 간편 구조 열아홉에 사 들인 어린 애 머리통만한 장식용 소라 껍질을 책장 위 칸에서 내려 내버려도 마땅할 것인데 누군가 이사 가며 아파트 정원에 던져놓고 간 내 것보다 더 큰, 어른 머리통만한 소라껍질을 하나 주워왔다 소라껍질은 뿔이 공격형, 전진의 신호 나 뿔났어, 찔러, 찔러, 보기에 좀 사납지만 살밑은 뽀얀 백색이거나, 살구색으로 미감은 여전히 따뜻하다 안방 세면실 앞 배꼽 높이의 수납장 위에 기꺼이 자리 하나를 내주었다 내 귀는 소라 껍질 심심치 않게 물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2018. 11. 21.
붉은꽈리 붉은 꽈리 지영희 조금씩 서운했던 얼굴들이 수십 년간 허파꽈리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하필이면 이 높은 하늘에서 반란을 일으키다니 손발이 싸늘해진다는 의미 앞에 세상에 있는 그림자란 것이, 햇살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오랜 시간 전 나비의 날갯짓에서 시작된 필연임을 낯선 의사의 배려를 받으며 눈 뜬다 담 밑, 꽃 같은 주머니 안에서 날 기다리던 꽈리들이 붉게 떠다니고 불편한 의자를 투덜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꽈리 속을 다 파내봐야 안다 괴로움을 겪는다는 건 햇살이 있기에 가능한 어둠인 것을 서운했던 얼굴들이 꽈리 하나씩 물고 끼르륵 이 사이로 내뿜는다 붉은 숨을. 2018.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