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詩 한 편367 아지랑이 아지랑이 오현스님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2018. 8. 30. 꽃밭에서 꽃밭에서 - 이수정 뜯긴 기억의 눈물 한 움큼 마음의 문을 열면 아련히 들려오는 "얘야 내가 죽으면 이 노래를 불러주렴" 10살 딸애는 그 소리가 그리도 싫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장례식에 딱 너 만한 딸이 그 노랠 부르더라 그 노래듣고 사람들이 함께 울었단다" 아버지는 내 나이 50이 넘게 사셨지만 나는 그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바람도 구름의 넋을 새겨 구겨진 꿈 다려 신고 세상 짐 모두 내려놓고 가시는 길에 꺼억꺼억 가슴을 치며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그 꽃밭엔 오늘도 투정만 부렸던 채송화 피어나나요 봉숭아 피어나나요 꽃 지는 이 시절에도 변함없이 피어나나요 아직도 당신의 딸은 나지막이 노래를 부릅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2018. 7. 24. 민들레 민들레 오미숙 칠곡에서 한 아이가 죽었다 그 죽음이 보도 되던 날 민들레는 노랗게 피었다 쓰레기를 먹어야만 했고 세탁기에 돌려져야 했고 벌거벗은 채 베란다에 서 있어야 했다 말 안 듣는다는 이유로 청량고추를 먹었고 목이 졸려 숨이 막혔었다 아이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오줌발을 막은 독한 그녀 노란 민들레는 한생이 끝나 다음 생을 위해 꽃잎을 떨어뜨린다 2018. 7. 18. 칠면초 칠면초 오미숙 와온 해변에 서 있다 한 때 우리는 바닷가의 널부러진 수초더미 같았다 멋대로 말하고 등을 돌려 버렸다 불안에 떨던 전화기 고성이 오가던 공간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칠게처럼 거품을 물고 짱둥어처럼 팔딱 팔딱 뛰는 갯벌에 칠면초 붉다 붉다가 푸르르 지고 푸르다가 노랗고 노랗다가 붉어지는 우리는 가까스로 그곳에서 벗어났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길을 걸어간다 어느새 그림자 따라 걷는다 2018. 7. 18. 연꽃 연꽃 이수익 아수라의 늪에서 五萬 번뇌의 진탕에서 무슨 저런 꽃이 피지요? 칠흑 어둠을 먹고 스스로 불사른 듯 화안히 피어오른 꽃. 열번 백번 어리석다, 내 생의 부끄러움을 한탄케하는 죽어서 비로소 꽃이 된 꽃. 2018. 7. 11. 해당화 해당화 한용운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얐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머 일즉 왔나 두려합니다 철모르는 아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얐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설에 대히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사진 해당화 2018.5.10.안면도 2018. 6. 27. 돌이 부처가 되는 것을 돌이 부처가 되는 것을 문혜관 누에가 나방 되는 것은 보았지만 돌이 부처가 되다니! 수도산 아래 봉은사 뜨락 커다란 바위가 석공의 손에 꽃이 피고 지고 몇 해 보내더니 비륵불로 환생하였다 맑고 고운 자태로 무역빌딩 넘어오는 햇살을 받더니만 지그시 눈을 뜨시고 사하촌 중생들에게 염화미소 지으신다 돌도 부처가 되건만 나는 몇 생을 닦고 닦아야 부처가 되는 건가 문혜관 시집 『 찻잔에 선운사 동백꽃 피어나고 』 2018. 5. 29. 한계령에서 한계령에서 1 ― 정덕수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 육천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 2018. 1. 23. 윤회의 바다 윤회의 바다 법공스님 바다에서 생산되는 생선과 해조류 때마다 반찬으로 섭취하고 몸 길러 백년 생 성만해도 흙에 갈무리하는 삶 그 무덤 빗물에 쓸리고 쓸려 다시 바다로 흘러가나니 그 스러진 몸 바다에 녹아 다시 생선과 해조류로 몸 바뀌었다가 다시 뭍으로 나오는 삶 태초에서부터 나는 그렇게 윤회의 수레바퀴 지은 업식도 모르고 돌리고 돌리며 살았다. 2017. 12. 27. 이전 1 ··· 5 6 7 8 9 10 11 ··· 4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