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詩 한 편367 개양귀비 개양귀비 나태주 생각은 언제나 빠르고 각성은 언제나 느려 그렇게 하루나 이틀 가슴에 핏물이 고여 흔들리는 마음 자주 너에게 들키고 너에게로 향하는 눈빛 자주 사람들한테도 들킨다. 2020. 6. 24. 도봉산 도봉산 정연복 잔뜩 흐린 날씨 희뿌연 안개에 갇혀 어제는 종일 가물가물하던 도봉산 오늘은 밝은 하늘 아래 더 산뜻한 모습이다. 안개가 아무리 짙은들 산이 어디로 갈까 늘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있는 거지 거뜬히 안개 헤치고 되살아오는 거지. 아! 저기 저 도봉산 천년 만년도 더 살아 있을 가만히 의연한 산. 2020. 6. 4. 삶이라면 삶이라면 이행숙 꺼질 줄 알면서도 바람앞에 버텨 서는 그 불꽃 뜨거웠지 두려움은 없었지 타다가 재만 남아도 후회 따윈 안 했지 시들 줄 알면서도 바람앞에 피어나는 벚꽃은 눈부시지 근심 걱정 하나 없지 눈처럼 흩날릴 때도 이별조차 환하지 2020. 4. 30. 다시 제비꽃 다시 제비꽃 나태주 너를 알고 난 다음부터 눈이 작은 여자가 좋았다 키 작은 여자도 좋았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했다 짧은 봄이 오래토록 떠나지 않았다 2020. 3. 15. 하나님 당신은 하느님 당신은 이해인 나에게서 당신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가난뱅이 여인 나에게 당신을 옷 입히면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궁전의 여인 하느님 아무래도 당신은 기적의 신(神)입니다 보이지 않는 당신이 순간마다 내 안에 살아 오시니 내가 감히 당신을 사랑하다니 당신은 물입니까 당신은 불입니까 당신은 바람입니까 사랑하는 자에게만 사랑으로 탄생하는 사랑의 신이시여 가장 짧은 말로 가장 깊은 기도를 바치게 하소서 2020. 3. 3. 바람의 시 바람의 시 이해인 바람이 부네 내 혼에 불을 놓으며 부네 영원을 약속하던 그대의 푸른 목소리도 바람으로 감겨오네 바다 안에 탄생한 내 이름을 부르며 내 목에 감기는 바람 이승과 빛과 어둠 사이를 오늘도 바람이 부네 당신을 몰랐다면 너무 막막해서 내가 떠났을 세상 이 마음에 적막한 불을 붙이며 바람이 부네 그대가 바람이어서 나도 바람이 되는 기쁨 꿈을 꾸네 바람으로 길을 가네 바람으로 2020. 2. 28. 첫사랑 첫사랑 고재정 흔들리는 나무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트린다 사진 : 눈오는 날 올림픽공원 2020.2.17. 2020. 2. 19. 찔레꽃 찔레꽃 송 찬 호 그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앴어라 벙어리처럼 하앴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 2020. 2. 14. 향기나는 사람 향기나는 사람 김진진 조용한 날에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은 그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의 그늘을 씻어준 때문입니다 먼 별빛으로 다가와 마음의 향기를 가르쳐준 때문입니다 오래된 묵향처럼 은은하게 스스로를 맑히며 깊어지다가 한적한 산사의 둘레길 같이 마음의 지평을 넓혀준 까닭입니다 대숲에 이는 청량한 바람이 되어 너와 나의 입과 귀를 다독이다가 산 절로 물 절로 파릇파릇 피어나 세상을 물들이게 만드는 까닭입니다 2020. 2. 4. 이전 1 2 3 4 5 6 7 ··· 4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