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詩 한 편367 그렇게 2월은 간다 그렇게 2월은 간다 홍수희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2월을 안다 떨쳐버려야 할 그리움을 끝내 붙잡고 미적미적 서성대던 사람은 2월을 안다 어느 날 정작 돌아다보니 자리 없이 떠돌던 기억의 응어리들, 시절을 놓친 미련이었네 필요한 것은 추억의 가지치기, 떠날 것은 스스로 떠나게 하고 오는 것은 조용한 기쁨으로 맞이하여라 계절은 가고 또 오는 것 사랑은 구속이 아니었네 2월은 흐르는 물살 위에 가로 놓여진 조촐한 징검다리였을 뿐 다만 소리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여, 그렇게 2월은 간다 2017. 2. 10. 대숲에서 대숲에서 왕유 어둠이 깃든 대숲에 홀로 앉아서 거문고 줄 튕기며 휘파람 부네 이 숲의 주민들은 알지 못하리 밝은 달이 찾아와서 비춰주고 있음을 당나라의 시인 왕유는 시뿐만 아니라 수묵 산수화를 잘 그려 남종문인화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소동파는 그의 시와 그림을 칭하여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속에 시가 있다"고 하였다.위 시도 수묵선(水墨線)의 담백과 여백의 미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생략되고 대숲-거문고-밝은달만 있는 이 풍경은 그러나 주체와 세계 사이의 완전하고도 행복한 합일을 보여주므로 고적(孤寂)을 넘어서 있다 2017. 2. 2. 첫마음 첫마음 정채봉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상쾌한 공기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깊어지며,넓어진다 2017. 1. 22. 산수유꽃 진 자리 산수유꽃 진 자리 나태주 사랑한다,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졌다 누구에겐가 말해주긴 해야 했는데 마음놓고 말해줄 사람 없어 산수유꽃 옆에 와 무심코 중얼거린 소리 노랗게 핀 산수유꽃이 외워두었다가 따사로운 햇빛한테 들려주고 놀러온 산새에게 들려주고 시내물 소리 한테까지 들려주어 사랑한다,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졌다 차마 이름까진 말해줄 수 없어 이름만 빼고 알려준 나의 말 여름 한철 시냇물이 줄창 외우며 흘러가더니 이제 가을도 저물어 시냇물도 입을 다물고 다만 산수유 진자리 산수유 열매들만 내리는 눈발 속에 더욱 예쁘고 붉습니다 (산수유 열매 2016.1.12.11. 올림픽공원) 2017. 1. 10. 탁발 탁발 김영주 민달팽이 일보 일배 해탈문을 나섭니다 저 한 몸 달랑 들어갈 걸망 하나 지고 가다가 아니다 이 집도 크다 다 버리고 갑니다 2017. 1. 9. 가을비 가난은 대를 이어 설움을 생산한다,살아서 가난이 종종 다음 세대의 가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을비"는 무덤 속 "빈털뱅이" 아버지가 슬그머니 걸어나와 가난한 아들의 손을 그러쥐고 흘리는 눈물이다 미안해 미안해,술 취해 붉게 흘리는 눈물이다 2016. 12. 18. 까치밥 까치밥 이동화 몸도 허공에서는 길이 되는구나 추운날 맨살의 몸뚱아리 어디로 가닿으려는가 하늘 위 저리도 앙상한 감나무 가지의 길들 푸른 이파리들을 키워내던 생의 한때를 지나 바람을 힘껏 움켜쥐고 좀 더 멀리 가지들은 다음 생인 봄으로 건너가고 있다 그 고단한 몸짓 사이로 감꽃을 기억하는 열매 하나가 붉다 단단한 목숨처럼 홀로 허공을 밝히고 있다 하늘에 길을 내는 나무도 때가되면 이파리를 다 떨구고 기다릴 줄 안다,다음 생에 다시 푸른길을 낼 것을 예감하며 꽃의 시절을 기억한다, 그래도 그 길의 끝에 배고픈 그 누군가 먹으라고 "까치밥"하나 남겨둔다 2016. 12. 11. 대숲에서 대숲에서 왕유(701~761) 어둠이 깃든 대숲에 홀로 앉아서 거문고 줄 튕기며 휘파람 부네 이 숲의 주민들은 알지 못하리 밝은 달이 찾아와서 비춰주고 있음을 2016. 12. 7. 驪江迷懷 여강미회(驪江迷懷) 목은(牧隱) 이색(李穡) 天地無涯生有涯(천지무애생유애) 천지는 끝없고 인생은 유한하니 浩然歸志欲何之(호연귀지욕하지) 호연히 돌아갈 마음 어디로 가야하나. 驪江一曲山如畵(여강일곡산여화) 여강 한 구비 산은 마치 그림 같아 半似丹靑半似詩(반사단청반사시) 반은 그림인 듯 반은 시인 인 듯하다. 2016. 12. 5.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4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