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詩 한 편367 감나무 감나무 목필균 세월의 행간을 읽으며 바람이 스쳐간다 단풍진 잎새 떨구고도 지워지지 않은 그리움이 앙금으로 내려앉았는지 오십 년 뿌리 내린 감나무 여기저기 옹이졌다 까치밥으로 남겨진 몇 알의 감처럼 누구에겐가 하루치 양식이 될 수 있다면 낡아진 육신쯤이야 무디어진 신경쯤이야 낙엽으로 떨구어져도 좋을 빈가지 흔들어 섬세하게 그물 친 하늘에 구름 만 걸려드는 11월 끝자락 2014. 12. 5. 11월 11월 임성용 감나무 가지에 감 하나 달려 있다 오래토록 묵은 세월이 잔가지에 쌓여가는 동안 나도 어느새 손 매듭이 굵어졌다 감나무가 저만큼 자라도록 봄이면 꽃을 낳아 가을이면 하늘 흥건하게 기르도록 나는 감나무를 위해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 어깨가 빠지도록 망치질만 했다 짓무른 눈빛이 아주 어두워져 내가 헐벗은 나무의 그림자 아래 흔들릴 때 그제서야 나는 농익은 감을 바라보았다 그때는 항시 일몰의 황혼이거나 달빛 그윽한 밤이었다 딱딱한 밥을 우물거리던 목구멍에서 눈시울까지 한 방울씩 붉게 번지는 노을을 젹셔두고 저혼자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부리 끝에 어둠을 물고 펄럭이는 잎사귀여 내 가뭇없는 기억 속으로 돌아오라 지금,창밖에 찬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고 치부처럼 드러난 몸의 궁색함이 발등 끝에 마른 껍.. 2014. 11. 26. 오래된 기도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2014. 11. 23. 11월 11월 김숙려 나 홀로 외로워 마주보고 선다 나 홀로 외로워 기대고 싶다 내가 있어 계절이 있고 네가 있어 계절이 오간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서로 기대어 산다 고운 단풍 나란히 오고 뺨 시린 바람 나란히 가고 먼별도 나란히 반짝인다 꽃잎 그루터기와 마른 가지에게 두 겹의 위로 보낸다 시린 바람 맞서기 위해 11월은 두 겹으로 마주선다 태양이 먼 길 돌아가는 12월 하나를 더 더한다 한손으로 기도할 수 없어 한손으로 안을 수 없어 두 손 마주 잡고 서로 나란히 기대어 산다. 2014. 11. 23. 자작나무 전설 자작나무 전설 방우달 자작나무 껍질에 편지를 쓰세요 이루지 못할 사랑일지라도 껍질 벗기는 아픔의 재 너머 참다운 사랑이 있다오 자작나무 껍질에 편지를 쓰세요 끝까지 함께 할 사랑을 위하여 사랑의 편지는 종이에도 쓰지 마세요 세상이 첨단을 걷는다 해도 더더욱 이메일로는 쓰지 마세요 자작나무 껍질에 편지를 쓰세요 순백의 사랑 맺어 준다오 2014. 11. 15. 자작나무 자작나무 류시화 아무도 내가 말하는 것을 알 수가 없고 아무도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없다 사랑은 침묵이다 자작나무를 바라보면 이미 내 어린시절은 끝나고 없다 이제 내 귀에 시의 마지막 연이 들린다 내 말은 나에게 되돌아 울려오지 않고 내 혀는 구제받지 못했다 2014. 11. 15. 노란 우산깃 은행나무 곽재구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엽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워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2014. 11. 14. 세상의 절반 세상의 절반 진은영 세상의 절반은 붉은모래 나머지는 물 세상의 절반은 사랑 나머지는 슬픔 붉은 물이 스민다 모래 속으로,너의 속으로 세상의 절반은 삶 나머지는 노래 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 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 세상의 절반은 노래 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 2014. 10. 31. 세상의 모든 길 세상의 모든 길 이승하 걸어간 사람들이 길을 만드는 법 길은 가고자 하는 마음이 만드는 법 세상의 모든 길은 내 앞의 사람들이 만들었다 혜초에 앞서 현장이 걸었고 현장에 앞서 부처가 걸었던 길 어디든 길 나서서 보라 내 앞에 걸어간 사람들의 수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을테니 2014. 10. 15.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4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