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과 詩 한 편367

겨울나무 겨울나무 장석주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있는 흠없는 혼 하나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 버릴때 마음도 떼어버리고 문패도 내렸습니다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2013. 1. 30.
자화상 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이 시가 쓰여진 게 1939년이라니까, 70년도 더 지난 세월이네요 그 옛날 깜깜하고 암울하기만 했던 일제침략시대에 시인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파란 이상세계에 비춰보는 내 모습의 현실은 참 여러가지로 보이지요, 그래서 젊은 시절에 애송시였던 적 있습니다 미워졌다.. 2013. 1. 23.
가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 양성우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사랑만 있는 곳, 근심걱정이 없고 슬픔도 없고 눈물 같은 것은 단 한 방울도 없는 곳, 내가 먹고 입을 것들이 조금쯤은 모자랄 만큼만 있는 그런 곳, 미움도 전혀 없고 싸움도 없는 곳, 높은 산 밑 깊은 물가에 맨살로 살지라도, 이별은 아예없고 언제나 반가운 만남만 있는 곳,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손꼽아 나를 기다리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만 있는 곳, 내가 죽어 그곳에 하얗게 흩어져도 다시 가고 싶은 그런 곳, 카라꽃 전설....옛날 남아프리카의 어떤 숲속에 순결을 상징하는 요정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요정이 새들과 이야기하며 놀고 있을 때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용사가 요정에게 첫눈에 반해 구혼을 하게 되었다네요, 그러자 요정이 "일곱 마왕이 지키고 있는 산을.. 2013. 1. 21.
옛 연인들 옛 연인들 김남조 지난 세월 나에겐 시절을 달리하여 연인이 몇 사람 있었고 오늘 그들의 주소는 하늘나라인 이가 많다 기억들 빛바랬어도 그 각각 시퍼렇게 멍이 든 심각성 하나만은 하늘에 닿았고 오늘까지 살아 있으니 그들 저마다 어찌 나의 운명 아닐 것인가 그 시절 여자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손뜨개 털장갑을 선물했으나 나만이 그거나마 단 한 번 못했으니 오랫동안 그분들 손 시려웠을지 몰라 빌고 비오니 그저 영혼 따뜻하게들 계시고 후일 우리 만나거든 그 옛날 장마비처럼 그치지 않던 눈물 얘기도 부디 미소지으며 나누게 되기를.... 2013. 1. 19.
나룻배와 행인 나룻배와 행인(行人) 한 용 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가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2013. 1. 7.
흰빛에 갇혀 흰빛에 갇혀 박남준 혼자였나 옆이였나 그때 누가 있었는가 혼자였지 보이지 않는데 거대한 흰빛에 갇혀 혼자였나 숲이였지 흰 숲 흰 나무 흰 흰 푸른 새는 죽었는가 혼자였지 흰 산이었는데 혼자였는데 저 앞이었나 흰 벼랑 뒤였나 혼자였나 흰 길 끝이었는데 갈 길 없는 어쩌지도 죽지도 못한 채 2013. 1. 3.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던(1572~1631) 세상 어느 누구도 외따로운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한 부분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흘러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모래벌이 씻겨도 마찬가지, 그대나 그대 친구들의 땅을 앗기는 것도 마찬가지다.그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손상시킬지니, 나는 인류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종이나니, 山寺나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면 문득 영원에 대한 감각이 깨어나는 듯 하다,존던을 흉내 내자면,현생의 순간순간은 영원의 한 조각이다 이 시에서 제목을 취해 헤밍웨이가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을 원작으로 게리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하여 영화가 만들.. 2013. 1. 1.
첫눈이 왔으면 좋겠어 첫눈이 왔으면 좋겠어 박남준 첫눈이 오시는 날 당신이 떠나가던 멀어가던 발자욱 하얀 눈길에는 먼 기다림이 남아 노을 노을로 졌네 붉게 타던 봉숭아꽃 손톱 끝에 매달려 이렇게 가물거리는데 당신이 내게 오시며 새겨놓을 하얀 눈길 위 발자욱 어디쯤인가요 눈이 왔으면 좋겠어 첫눈이 왔으면 좋겠어 2012. 12. 28.
감나무 감나무 박남준 삶이 때로 골목 끝에 서서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약없이 기다리는 일의 연속일 때가 있다,그렇게 봄과 여름을,가을과 겨울을 건너오는 동안 시간은 청년을 중년으로 귀밑머리 하얀 황혼으로 물들일 것이다 오래된 골목 끝에 서 있는 감나무 한그루,땅속 깊이 푸른 두레박의 물을 길어 올리며 새순을 틔우고 가지가지 붉은 감을 꽃등처럼 내걸던 나무가 잎을 다 떨구고도 끝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사랑은 그런 것인가 2012.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