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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詩 한 편367

바람아래 겨울나무 바람 아래 겨울나무 박남준 마음속에 길을 가지고 있었는가 고여 있는 사람이 있네 새들과 풀벌레 스스로 죄지은 것 없어 부끄러움 없는 것들이 다가가면 멈추고는 했네 오래 머물렀으나 바람 부는 데로 흔들렸네 할 일이 남은 모든 것들 몸을 낮춰 땅으로 내려앉는 가을이며 빈 몸의 겨울숲에 들어도 사내는 웅크린 채 아무래도 이건 아니야 사내는 다만 마음속의 길만을 생각했네 잊었다는 듯이 겨울이 오고 더불어 떠나는 자들의 시간이 바람처럼 길가에 자욱해도 사내는 다만 가지 못한 길만을 생각했네 겨울나무숲에 눕는다 너도 이렇게 이 자리에 붙박혀버렸느냐 그리하여 바람이 불 때마다 나부끼며 그렇게 바람 아래 서서 눈 내리고 흐린 날 겨울의 두물머리는 흑백사진이나 칼라 사진이나 차이가 없다 그 무성했던 잎들은 다 어디로 갔.. 2012. 12. 21.
탄도항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아름다운 순간에 떠오르는 사람 있나요? 틈틈이 들르는 산골에 갔다,첫서리가 이미 지나간 산촌의 스산한 아름다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 지경이다.바위에 고스란히 떨어져 쌓여 있는 물든 나뭇잎과 고여있는 수정같은 물,구름...간혹 안개가 낀 날은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가깝게 들린다,어디로 가는가,보이지 않는 소리마져도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된다,"혼자 있기 아깝다"이 느낌, 함께 했으.. 2012. 12. 7.
못 정재호 철없이 벽에도,남의 가슴에도 숱한 못을 박아 놓았다 보모님,형제,친구,제자,아내,자식들 가슴에 알게 모르게 박아 놓은 못 죽기 전에 내 손으로 그것을 뽑아 버려야 할텐데 부모님은 이미 먼 길 떠나셨고 아내는 병이 들었고 형제는 절반이 이승을 떠났고 자식들은 다 커 버렸다 지금도 그대들 가슴속 어딘가 박혀 있을 못을 무엇으로 뽑아내나 뉘우침이 못이 되어 내 가슴 깊이 박힌다 하루하루 남 때문에 상처받고,남에게 상처주며 살아가는 세상살이,벽에 박아 놓은 못이야 용도가 끝나면 뽑아버릴 수 있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의 가슴에 박힌 굵은 못은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다, 때를 놓치면 아무리 후회하고 반성해도 이미 늦는다는 것이 시인의 성찰이다 2012. 11. 29.
이 가을에 이 가을에 민 영 나뭇잎 물든 것이 꽃보다도 아름답습니다 붉은 잎 아래 노란 잎 노란 잎 아래 설익은 푸른 잎이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습니다 신령님은 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눈 부시게 꾸며주고 계십니다 아귀 다투는 사람만이 등 돌리고 지나갈 뿐입니다 2012. 11. 20.
하루만의 위안 하루만의 위안 조병화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들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헤어진 다음날"이란 노래가 있다,생생하고 사실적인 가사가 압권이다,그에 따르면 이별이란 이별후에 찾아오는 "견딜 수 없이 긴.. 2012. 11. 13.
가을 감잎 가을 감잎 김인자 감잎 한 장 손위에 얹으면 잎새에 손금처럼 그려진 기억들 봄날 연두 빛 새순피던 설레임이 밀려온다 귀 대어보면 빗방울 두드리는 소리 멀리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오는 듯 가을 감잎 가만히 품에 안으면 붉게 물드는 그리움 입김처럼 스며오는 따스한 사랑 가을 보내고 싶지 않다 감잎이 이렇게 붉게 지는 것을 도시사람들은 아마도 잘 모르리... 가을이 지나가는 올림픽 공원에서 나는 쪼그리고 앉아 수북하게 쌓인 붉은 감잎들을 본다 넓고 두꺼운 붉은 잎들은 떨어져 누웠어도 요염하지 대채, 가을 나뭇잎들은 왜 이리 고운 것인가...? 어린 시절 고향집 뒷뜰에는 감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아마도 저절로 난 고염나무를 자르고 아버지가 우량한 감나무로 접붙여 주신 나무일 것이다 내가 어른이 되어 그 집에.. 2012. 11. 11.
석류 석류 정지용 장미꽃 처럼 곱게 피어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개어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 처럼 어린 여릿여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해 시월 상달, 우리 둘의 조그만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銀)실, 은(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 천 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아파트 현관앞에 오래된 석류나무 한그루가 있다 집에 드나들 때마다 보는 석류꽃이 그리 예쁘더니,올해는 유난히 석류가 .. 2012. 11. 8.
실없이 가을을... 공연이 화려한 색갈이 싫어질 때도 있다. 일체의 색을 빼고 바라보면 세상은 그만큼 단순하게 보일른지 모른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은 매우 주관적이고 수시로 변하기도 하고... 오래전, 거실에 1m20cm나 되는 수족관을 들여 놓고 처음에는 잉어를 길렀는데, 잉어는 아무래도 그정도 크기로는 비좁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금붕어를 입양하게 되었다, 빨강, 노랑 검정 흰색까지 색갈도 다양하고 지느러미까지도 가지가지... 처음에는 그렇게 이쁘더니, 1년 쯤 지난 어느날 수족관에서 '납자루"라고 부르는 우리나라 토종 물고기를 몇 마리 들였다 색갈은 암록색으로 칙칙한 붕어와 비슷한 녀석들이었는데, 하... 그런데 그것 참! 이상도 하지 지금까지 예쁘던 금붕어보다 칙칙한 색에 하얀배를 반짝이며 빠르게 헤엄치는 .. 2012. 10. 31.
가을엽서 가을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2012. 10. 16.